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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을 펼치면
주체의 지위라는 글이 제일 처음 나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개체 혹은 주체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해서
그자신의 독특한 "타자성"의  철학적 사유를 펼쳐 냅니다.
지금부터 간략히 이 글에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개체 혹은 주체에 대해서 특히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카르트의 사상을 흔히 이야기할 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이라는 명제를 흔히 떠올립니다. 그가 이러한 명제에 도달하게 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철학의 임무를 "어떻게 우리는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떠한 진술이나 판단이 확고한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평생을 철학과 그리고 수학에
매달렸던 이유도 바로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이지요.

그의 말을 좀더 들어봅시다.

"만약 인식되는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한 원리들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내 출발점의 확실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확실한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단 나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고 가정하겠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그런 철저한 의심을 견뎌 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나는 학습과 독서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습득한 모든 것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달리 말해
내가 지각하는 그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의심해 볼 것이다.
그럴 것이 인간의 감관이 다양한 착각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모든 것 중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의 원리들도 의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지성은 진리 인식에 부적합하여 끊임없이 오류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철학사. 한스 요하임 슈퇴리히 480~481쪽)

이처럼 그는 인간의 "감관"과 인식이라는 것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불완전한 정보를 통합하고 검토하며 보다 확실한 기초위에 세울수 있는가
라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온 결론이 소위 "코기토cogito" 였던 겁니다.

그런데 '정신'의 '명석, 판명'한 상태를 일컫는 이 데카르트적 주체로서의 '코기토'는 사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오인되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레비스트로스는 데카르트적 주체인 이 코기토를
자명한 주관적 자기 혹은 주체로 이해합니다. 사트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비판하기 위하여 데카르트를
동원하였던 셈인데 고진은 이러한 데카르트의 코기토이해를 거부합니다.

"데카르트가 '정신'의 명석, 판명에 호소했던 것은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이래의 과학, 즉 우선 가설을
세우고 거기에 응하는 실험을 고안하는 방법적 기초를 놓기 위해서이다. 후에 칸트가, '대상'은 인간 감성의
형식과 오성의 카테고리에 의해 구성된다고 말했던 것도 그런 의미이다....데카르트는 우리의 사고가 언어와 문법과
관습에 의해 결정, 지배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그는 우리가 어떤 시스템이나
패러다임 또는 에피스테메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자각, 이 코기토는 심리학적인
자기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 자기가 어떠한 시스템 또는 구조에 지배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서 존재하는
초월론적인 자기이다." (유머로서의 유물론. 가라타니 고진. 12쪽)

이처럼 그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심리학적 주관으로서의 자기로보는 관점을 비판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초월론적인 자기"
라는 것이지요. 코기토를 인간의 지식이 만들어낸 경험적 '데이터'나 '시스템'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체계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시스템의 보편성"을 의심하는 것 속에서 자기 혹은 주체의 기초를
세우려 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경험적 체계의 외부에 위치해 있어서 칸트적으로 말하자면 "초월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스템을 의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외부성 때문에 그는 '신'을 도입합니다. 자칫 순환적인 논증이 되어 버릴 수있는 코기토를
신이라고하는 외부성을 도입하면서 해소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시스템의 외부에 있는 절대적 타자 혹은 차이로서의 '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기존의 종교나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격적 "신"으로 데카르트의 신 논증을 이해하게되면 그가 코기토를 이야기하게 된
과정으로서의 신을 잘못 이해하게 됩니다. 자칫 개별적 인식 주체의 나약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외부적인 신이 도입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가 코기토를 통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단독적이며 사私적인 "타자성"입니다.
고진의 이야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가설은 개인에 의해 세워진다. 그리고 경험이나 그때까지의 '선례와 관습'과는 다른 것인 이상,
가설은 소위 고립된 '정신'속에서 올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가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때까지의 '선례와 관습'에 반해 가설을 세우는 사람이 반드시 정립하지 않을 수 없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적극적positive으로 조정 할 수 없다. 그것은 시스템 사이에 있는 것이므로 위치를 정할 수 없다."
(유머로서의 유물론. 가라타니 고진. 14쪽)

여기서 그는 코기토를 "시스템 사이에 있는 것으로 위치를 정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코기토를 더이상 인식론의
차원에서 논하기보다는 '장소'의 차원에서 사유해보자는 것이지요. 코기토가 "시스템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코기토의 '단독성'singularity을 전제합니다. 즉 어떠한 보편이나 일반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체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개별로서의 주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일반의 순환적 회로 속으로 환원되기 위해 존재하는 '특수성'과는 다릅니다.
특수 - 일반이라고 하는 환원적 쌍과는 달리 단독 - 보편이라고 하는 쌍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단독성입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와 같은 개념에서는 보편성이 오히려 모나드와 같은 개체 속에서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모나드에는
"서로 창窓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보편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에서의 '특이점'이 미분불가능한 지점을
나타내는 것처럼 더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존재로서의 지점이 바로 단독성으로서의 개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코기토'라고 가라타니 고진은 이야기 합니다.
계속해서 그는 단독성-보편성의 의미들을 탐구해 갑니다. 특히 맑스가 자본론에서 행했던 방법론을
단순한 헤겔의 '유물론적 전도'라고 보지 않고 맑스의 전회는 이러한 " '개체 - 류' 또는 '특수성 - 일반성'의 회로를
'단절'rupture하는 '단독성 - 보편성'의 회로가 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등 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관점을 그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심화시켜 나갑니다. <유머로서의 유물론> 이후에도 <탐구 1,2>와 같은 저작들
특히 <트랜스크리틱>과 같은 저작을 통해서 발전시켜왔던 것이지요. 특히 <트랜스크리틱>에서는 칸트의 초월론적 철학과
맑스의 자본론 속에 내재하는 '타자성'과 '단독성'의 성격을 밝힘으로써 그의 사상을 더욱 심화시켜왔죠.
그의 사상적 궤적에 관심있는 분들은 <유머로서의 유물론>과 <탐구 1,2> <트랜스크리틱>등의 책을 연속적으로 비교독해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