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와이프로 살아가기
- 작성일
- 10-03-17 07:22
좀 긴 글입니다.
인터넷 검색에 '유학생 와이프'라고 검색해보면 이것저것 참 많은 것이 검색됩니다.
유학생 와이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각종 유학 생활 정보가 담긴 수많은 카페들까지...
그것도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호주 등 다양한 나라들 별로
각 나라 안에서도 지역 및 도시 별로 참 이야기들이 많고 사연도 많습니다.
2007년 미국 SEVIS 통계에 따르면 초중고를 포함하여
미국 내 유학생 71만명 중10만명 이상이 한국인이었고
2008년 미국 IIE 통계에 따르면 미국 유학생 약 67만명 중 7만명 정도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초중고 조기유학생을 제외하더라도
실제로 굉장히 많은 수치임이 틀림 없습니다.
대부분 미혼인 학부 유학생을 제외한 석,박사과정 유학생들의 숫자는 가늠이 안되지만
최소 몇만명이 미국이라는 큰 땅떵어리 여기저기에 퍼져서
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네요.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에게는 가족이 있지요.
문득 왜 유학생 와이프는 많은데
유학생 남편은 잘 없는 지 궁금하네요.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온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실제로 아직 거의 보질 못했습니다.
사실 주변에 한 커플이 있긴 한데 아마 유일한 듯 싶네요.
아직 우리 사회가 남성중심적이라는 반증이 아닌가 하네요.
부부가 함께 유학오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보면 남자의 진로가 양쪽의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암튼...
유학생 와이프
그들은 참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선 그들은 매우 애매한 신분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유학생은 F-1 비자를 받아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모든 주에서 사회보장번호를 받아 허가하에 영리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학생 와이프를 포함한 유학생의 모든 가족은 F-2 신분입니다.
일부 복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선 합법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영리활동은 무조건 금지되어 있으며 사회보장번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주에서 운전면허증을 딸 수도 없습니다.
결국 활동에 제한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나마 캘리포니아, 뉴욕 등 일부 지역에선 F-2 신분에게도
운전면허 응시를 허용하고 있어서 다행스럽긴 합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주어진 일이 없습니다.
남편은 매일 같이 과제, 페이퍼, 프로젝트에 치여 사느라
항상 바쁘게 무언가를 해야하기 때문에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외부 활동을 하다보면 당연하게 활동의 범위도 넓어지게 됩니다.
반면 유학생 와이프에게는 딱히 주어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학생 와이프들이 처음에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료한 하루를 계속해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아침부터 학교가서 해가 질 무렵에나 들어올 때까지
자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나서서 해야합니다.
그런데 언어도 문제이고 아는 사람도 없고 정보도 없습니다.
한창 바쁠 때에는 마냥 쉬고 싶은데 한동안 쉬다보면 결국 그것도 쉽지 않아집니다.
세번째로 그들에게는 동료와 친구가 부족합니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학생인 남편은 새로운 곳에 와서
새로운 인맥을 쌓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게 됩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 프로젝트 하는 동료, 지도교수 등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동료와 친구라는 인맥을 쌓게 됩니다.
반면 유학생 와이프는 그렇게 친구를 만들 통로가 없습니다.
이런저런 계기로 새롭게 사람을 사귀기도 하지만
나이 먹고 쉽게 누군가와 친해지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기도 역시 어렵습니다.
한 학교에 4~5년 이상 머무는 사람도 있지만
포닥이나 비지팅스칼라로 1년 정도 단기간 머물다가 가는 분들의 와이프들도 있기 때문에
이 사람과 언제까지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불투명 하기도 합니다.
네번째로 그들은 항상 빠듯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MBA를 하고 돌아오신
재벌2세 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아무리 돈을 벌어왓다 한들
미국 대학의 비싼 학비와 생활비로 인해 금새 동나고 맙니다.
장학금, 생활비를 학교에서 받는다고 해도 넉넉하게 주지도 않습니다.
그냥 딱 먹고 살 정도로만 줍니다.
생활이 워낙 쪼들릴 경우 와이프가 직접 돈을 벌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불법취업을 한 것이 되므로 낮은 임금을 받을수 밖에 없고
일도 고되고 힘든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서 생활하던 수준보다 비교적 낮은 수준의 생활을 하게 때문에
예전만큼 갖고 싶엇던 것도 갖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합니다.
밖에서 사먹자니 비싸기만 하고 기분전환할겸 무언가를 사자니
남편에게 욕먹을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혼 전엔 귀찮아서안 햇던 요리를 하나 둘 씩 시작하게 되고
조만간 김치와 깍두기도 혼자 담그게 됩니다.
한국에선 떡볶이를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오면 되고
피자나 중국음식이 먹고 싶으면 시켜서 먹고
스파게티를 먹고 싶으면 시내에 널린 파스타 집에 골라가면 되지만
여기선 다 만들어 먹습니다. 외식은 한두달에 한 번 있는 아주 드문 현상입니다.
한국에선 누군 시어머니께 음식을 배웟다고 하고
누군 친정어머니께 음식을 배웟다고 하지만
여기선 네이버로부터 음식을 배웁니다.
다섯번째로 그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펼칠 기회가 사라집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 나오고 큰 꿈을 안고 좋은 직장에서 좋은 경력을 쌓고 왓지만
이곳에 오면 누군가의 와이프일 뿐입니다.
고등 교육을 받을수도 취업을 할 수도 없기에 아무리 능력이 있다해도 펼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무살 때 했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고
'내가 이럴라고 여기가지 남편따라 왓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 육아는 혼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결국 아이에게 모든 것이 얽메이게 되어 자신의 원래 꿈과 희망은 안드로로 가게 됩니다.
물론 개중에는 1~2년 후 정식으로 어플라이하여
남편처럼 학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이 과정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더군요.
이처럼 유학생 와이프들은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위대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한된 신분이어도, 친구가 없어도, 할일이 없어도,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꿈과 희망이 사라져가도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 서두에 유학생 와이프라고 검색해본 이야기를 잠깐 했었죠.
아무래도 외로운 존재이다보니 인터넷을 통한 활동이 활발합니다.
한국에선 인터넷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제 와이프도
이곳에 와서는 거의 폐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ㅋㅋㅋ
미시USA, 미시쿠폰, 미즈빌이라고 혹시 들어보셧는지 모르겠는데
미국 내 한국 주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도 어깨 너머로 와이프가 들락거리는 걸 보고 있네요.
교포인 분들도 있지만 유학생 와이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한풀이, 각종 정보 등이 모두 담겨 있는 곳입니다.
와이프도 이곳들을 들락거리면서 많은 재미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 같네요.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을 19살에 끝냈듯이
유학생 와이프라는 신분은 언젠가는 끝납니다.
남편이 학위를 마침과 동시에 유학생 와이프라는 신분도 종료되겠지요.
그러면 그 다음은 장미빛 미래가 펼쳐져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위 취득을 하더라도 교수나 연구원의 연봉이 워낙 적다보니
유학생 당사자는 몇년간 이고생해서 왜 학위를 땄나 하는 회의감도 들게되고
학위취득 후의 밝은 미래를 기대했던 유학생 와이프들도 역시 힘들어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그나마 자리를 구한 사람들은 뭔가 시작할 구석이라도 있지만
가뜩이나 고학력 백수가 넘쳐나는 이 즈음
수년간 들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구하지 못한채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경우
유학생 당사자는 물론 남편의 성공을 바라고 옆에서 지켜본 유학생 와이프들의
허탈감과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잠깐잠깐햇던 외국 여행,
사진과 영화에서 본 외국의 아름답고 멋진 이미지,
길모퉁이마다 있는 고즈넉한 카페와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아침마다 갓 구운 빵을 싸게 팔고 있는 아기자기한 베이커리.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과 깔끔하고 멋진 도시,
'러브스토리인 하버드'에 나올법한 꿈같은 유학생활과 캠퍼스....
이건 그저 낭만이 아닐까요?
가끔은 여행도 가고 주변 맛집도 돌아다니고 하지만
그건 아직은 아주 잠깐일 뿐이더군요.
혹시 모르죠... 나중에 퀄이라도 패스하면 좀 나아질지^^
너무 긴글을 쓴 것 아닌가 합니다.
이번주가 중간고사 기간인데 저는 중간 과제만 몇개 있어서 계속 집에서 작업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온갖 잡생각만 많네요 ㅋㅋ
다행히 제 와이프는 처음엔 이곳 생활에 좀 답답해 하더니
요즘은 요리에 취미를 붙였고 새로 사귄 친구집에 가서 함께 케익도 만들어 오네요.
또 매일같이 영어 배우러 다니고 있어서 어떤 땐 저보다 더 바빠보이기도 합니다.
발코니엔 상추, 깨 등을 심어서 열심히 매일 키우고 있는데
며칠 전엔 새가 먹고 도망갔는지 사라졋다고 울상이더군요.
다음주엔 1주일간 방학입니다.
고생하는 와이프와 함께 머리라도 식히고 와야겠어요.
그냥... 저와 함께 해주는 그녀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미치도록 고마울 따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