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서양의 역법
- 작성일
- 10-11-01 23:11
옆동네에 가보니 조선시대와 관련된 흥미로운 글이 있더군요.
http://www.mlbpark.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828492
이글의 요지는 조선이 생각보다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국가는 아니라는건데..
그 근거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등의 기록의 역사를 가진 국가였고..
1400년대 세종때 이순지라는 관료가 <칠정산외편> 등과같은 책에서 볼수있는 매우 정밀한 역법을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글 자체는 뭐 조선조의 장점을 이야기할때 흔히 이야기되는 내용들로 이루어졌기에 특별할게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저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이순지와 관련한 조선시대의 역법에 관한 부분입니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허성도씨가 강의했다는 녹취록으로 이루어진 이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이 부분을 읽어보면 이순지는 1444년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분석하여 당시에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한 역법책인 <칠정산외편>을 썼는데 이로서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의 말을 빌어 이야기를 하는군요.
그래서 이 말 (1400년대 자기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하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아라비아 중국 조선 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집에 있는 관련 책들을 한번 들춰보았더니...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더군요.
15세기 그러니까 1400년대 뉘른베르크에서 레기오몬타누스Regiomontanus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에 아라비아를 통해 전해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책인 <알마게스트>를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 <알마게스트>를 복원하는데만 그친게 아니라 이를 새롭게 리뉴얼했다는군요. 그것이 그가 죽은 뒤 1496년 출판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요강 Epitoma in Ptolemoei Almagestum>입니다. 서양에서 지동설의 개척자로 언급되는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는 레기오몬타누스와 그의 스승이었던 포이어바흐를 "나의 직접적인 선행 연구자"로서 그의 역사적 저작인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에서 언급했다고 합니다. 특히 레기오몬타누스의 스승인 포이어바흐가 저술한 <천체력>이라는 책은 바르톨로메나 바스코 다가마 콜럼버스가 대양을 건너는 항해를 했을때 사용했다고 하는데 컬럼버스는 그의 "네번째 항해에서 월식 예보를 근거로 자마이카의 인디오를 놀라게 했"다는 내용도 나오는군요. (<16세기 과학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506쪽)
Johann Regiomontanus
그리고 위에서 이순지가 분석했다는 아라비아의 '회회력'이라는게 사실은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의 영향을 받은 역법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알마게스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미 지동설을 기반으로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방법을 기술하였다고 합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83859 그러니 이순지의 작업은 독창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고대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역법과 천문학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아라비아의 천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라 할 수있지요. 이(회회력)를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하였다는 부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빈출신의 학자였던 포이어바흐와 레기오몬타누스도 15세기사람이므로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 할수 있는 나라가 아라비아, 중국, 조선"이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 되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 혹은 조선에서의 과학의 발전과 서양에서의 과학의 발전방법의 차이입니다. 동아시아에서의 과학의 발달은 이순지의 예에서 보다시피 중앙집권적 국가기관이 중심이되어서 관료들이 개발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서양의 경우 14세기와 15세기에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과 특히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직인이나 상인계급의 사私적인 필요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있지요.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차이지만 결국 이러한 차이가 서구에서는 근대적 과학이 태동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한 특출난 관료의 개인적 업적으로 그치고 마는 차이점으로 연결되지요. 다시말하면 동양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근대화(근대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고 봐야죠)의 토양이 되지 못하고 개인적인 발명혹은 발견에 그쳤다면 서양에서는 시민계급과 상인계급의 발전의 배경을 이루게 되면서 관료나 국가의 개입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동양에서는 과학의 발전을 상업과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반면 서양에서는 그렇게 할 수있었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마저 지적해줄 필요가 있어보이는데 위에서 인용한 허성도씨의 글은 조선이라는 국가체제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다보니 세부사항에서는 좀 균형을 잃어버린듯한 감이 있는 글이네요.
http://www.mlbpark.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828492
이글의 요지는 조선이 생각보다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국가는 아니라는건데..
그 근거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등의 기록의 역사를 가진 국가였고..
1400년대 세종때 이순지라는 관료가 <칠정산외편> 등과같은 책에서 볼수있는 매우 정밀한 역법을 발명?했다는 것입니다.
글 자체는 뭐 조선조의 장점을 이야기할때 흔히 이야기되는 내용들로 이루어졌기에 특별할게 없는 것이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저의 흥미를 끄는 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이순지와 관련한 조선시대의 역법에 관한 부분입니다.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허성도씨가 강의했다는 녹취록으로 이루어진 이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이 부분을 읽어보면 이순지는 1444년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분석하여 당시에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한 역법책인 <칠정산외편>을 썼는데 이로서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있는 나라는 전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의 말을 빌어 이야기를 하는군요.
그래서 이 말 (1400년대 자기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하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아라비아 중국 조선 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집에 있는 관련 책들을 한번 들춰보았더니...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더군요.
15세기 그러니까 1400년대 뉘른베르크에서 레기오몬타누스Regiomontanus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에 아라비아를 통해 전해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책인 <알마게스트>를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 <알마게스트>를 복원하는데만 그친게 아니라 이를 새롭게 리뉴얼했다는군요. 그것이 그가 죽은 뒤 1496년 출판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요강 Epitoma in Ptolemoei Almagestum>입니다. 서양에서 지동설의 개척자로 언급되는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는 레기오몬타누스와 그의 스승이었던 포이어바흐를 "나의 직접적인 선행 연구자"로서 그의 역사적 저작인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에서 언급했다고 합니다. 특히 레기오몬타누스의 스승인 포이어바흐가 저술한 <천체력>이라는 책은 바르톨로메나 바스코 다가마 콜럼버스가 대양을 건너는 항해를 했을때 사용했다고 하는데 컬럼버스는 그의 "네번째 항해에서 월식 예보를 근거로 자마이카의 인디오를 놀라게 했"다는 내용도 나오는군요. (<16세기 과학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506쪽)
Johann Regiomontanus
그리고 위에서 이순지가 분석했다는 아라비아의 '회회력'이라는게 사실은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의 영향을 받은 역법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알마게스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미 지동설을 기반으로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방법을 기술하였다고 합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83859 그러니 이순지의 작업은 독창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고대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역법과 천문학 그리고 이를 이어받은 아라비아의 천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라 할 수있지요. 이(회회력)를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하였다는 부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빈출신의 학자였던 포이어바흐와 레기오몬타누스도 15세기사람이므로 "1400년대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 할수 있는 나라가 아라비아, 중국, 조선"이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 되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더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 혹은 조선에서의 과학의 발전과 서양에서의 과학의 발전방법의 차이입니다. 동아시아에서의 과학의 발달은 이순지의 예에서 보다시피 중앙집권적 국가기관이 중심이되어서 관료들이 개발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서양의 경우 14세기와 15세기에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과 특히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직인이나 상인계급의 사私적인 필요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있지요. 이러한 차이는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차이지만 결국 이러한 차이가 서구에서는 근대적 과학이 태동하게 만든 배경이 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한 특출난 관료의 개인적 업적으로 그치고 마는 차이점으로 연결되지요. 다시말하면 동양에서는 과학의 발전이 근대화(근대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고 봐야죠)의 토양이 되지 못하고 개인적인 발명혹은 발견에 그쳤다면 서양에서는 시민계급과 상인계급의 발전의 배경을 이루게 되면서 관료나 국가의 개입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동양에서는 과학의 발전을 상업과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반면 서양에서는 그렇게 할 수있었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마저 지적해줄 필요가 있어보이는데 위에서 인용한 허성도씨의 글은 조선이라는 국가체제의 우수성을 강조하려다보니 세부사항에서는 좀 균형을 잃어버린듯한 감이 있는 글이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