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허구적 가상으로부터 실재를 분별하기

이리엘님의 그리고 알라딘 로쟈님의 포스트를 보고 영감을 받아 써 보는 글입니다.

http://www.baseballpark.kr/bbs/board.php?bo_table=bullpen2&wr_id=490723&page=7

http://blog.aladin.co.kr/zizek/4100009




이리엘님의 탁견에 의하면 신정환의 그 문제적 사진 한 장은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의 구도를 차용함으로써 높은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물론 그 글자체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통찰력을 보여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신정환의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실재적 가상” 혹은 “가상적 실재”입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미지가 실재나 현실이라는 원본적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할 수 없는 다시말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카오스)상태이기만 한 것일까요? 아니면 들뢰즈가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것 자체가 (잠재적) 실재를 포함하는 “차이나는 반복”으로서의 생성이요 순환일까요? 이 경우에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혼돈(카오스)라기보다는 일종의 “혼돈속의 질서”(카오스모스chaosmos)에 가깝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혼돈이요 허구이고 가상일 뿐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일정한 질서나 혹은 실재가 감추어져 있다는 식이지요.

한편 지젝은 이미지를 라캉의 상상계-상징계-실재계라고하는 삼항이 서로 중첩되어있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라는 형태로 이해합니다. 상상계와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는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서로 상호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의 고리만 끊어져도 전체의 구도가 소멸되는 그런 구조로 보아야한다는 것이지요.

 




가령 우리는 흔히 후기자본주의단계에 있는 대량소비의 사회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런 대량의 소비를 부추기는 배경에는 소위 광고라는 이미지의 조작이 존재합니다. 광고를 통해 우리는 일상생활로부터 상품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이미지의 조작에 노출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일상에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 상품들을 구매하는 행위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실재(현실)--->가상(허구)로의 변화는 이 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자본에 의해 추동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광고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의 유통과 소비에만 집중할 뿐 그러한 가상의 배후를 캐묻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작동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실재의 가상화는 가상을 실재화하려는 열정이나 사건에 의해서 교란됩니다. 광고에 의해서 촉발된 소비심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카드정지 혹은 신용불량이라는 사건을 목도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실재로의 이동이 발생한 것이지요. 이렇게 “실재와 가상의 변증법”은 완성됩니다.

이제 다시 신정환의 사진으로 돌아와 봅시다.
신정환의 병원사진이 의미하는 바는 그래서 이중적입니다. 먼저 신정환이 그 사진을 만테냐의 작품인 <죽은 그리스도>의 각도로 찍어서 올린 행위는 실재의 가상화에 해당합니다. 필리핀에서의 자신의 도박행위를 <죽은 그리스도>와 같은  ‘희생’의 이미지로 허구화함으로써 은폐하려하였고 또 이를 통해 자신의 예능인으로서의 이윤추구를 지속하려고 기도했던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 혹은 가상은 가상의 실재화라는 폭력적 개입을 통해 재해석을 요구받게 됩니다. 단지 이미지의 소비주체인줄로만 알았던 소비대중이 반복된 리콜사태로 인하여 해당 상품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 신정환이 바랬던 허구적 가상은 가상의 실재화에 의해 실재적 가상으로 변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신정환의 그 문제적 사진이 공개되었던 바로 그 순간은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지갑을 열었던 순진하기만 했던 소비대중이 인터넷상에서 비방과 욕설을 일삼는 가학적 악플러로 변모하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신정환은 문제의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실재를 허구화하려하였지만 대중들은 그 사진을 신정환의 뒤틀린 내면의 실재를 대면하게 만드는 이미지로 보았던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가 신정환의 사진을 보고 해야 할 일들은 지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의 어떤 부분이 환상을 통해 ‘기능변화’를 겪는지 식별하고, 그래서 그것이 현실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허구적인 양태로 지각되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넘처나는 ‘가상현실’에서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남는 방법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현실로부터 실재를 걷어낸 가상으로의 이미지만을 소비하게 되면 어느날 갑자기 카드사용정지라는 실재로부터의 침입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라캉에 의하면 신경증자의 증상symtom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 무엇입니다. 단지 하나의 증상이 다른 증상으로 변이될 따름이지요. 그에 의하면 (정신)분석의 종료는 증상의 치료에 의한 종료가 아닙니다. 신정환의 사진이 보여준 효과는 결국 우리에게 일종의 증상symtom과도 같습니다. 그 사진으로부터 보여지는 증상에는 가상이면서 실재이고 실재이면서 가상인 역설이 자리잡고 있고 또 그 역설적 증상의 효과로부터 증상의 ‘전이’를 획득하는 우리들 자신들이 투영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시 증상은 반복됩니다. 분석은 종료되지 않고 다시 반복될 따름입니다.      

 

P.S. 이 글을 너무 진지하게 읽으시면 탈납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