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소수자의 아름다운 도시
- 작성일
- 10-11-10 13:56
샌프란시스코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의 주기는 매우 불규칙하고 느닷없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미 싸질러놓은 물인 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써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 째 글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소수자의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10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 (이미지 출처 : www.mlb.com)
2010년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컵은 내셔널리그 서부리그의 명문구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차지했다.
팀으로서는 1954년 이후 56년만의 우승이자, 1958년에 연고지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이후 첫 우승이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샌프란시스코를 연호했고 도시는 축제의 물결로 뒤덥혔다.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명문 야구팀 외에도 샌프란시스코는 금문교, 케이블카, 크고 작은 언덕, 차이나타운 등
도시를 상징하는 다양한 모습들로 인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이다. 2010년 현재 인구는 85만 명에
불과하지만 인근 산호세와 오클랜드를 아우르는 인구 720만 명 규모의 광역 도시권을 대표하고 있다. 서부의 월스트리트라
불릴 정도로 발달한 금융 중심으로서 세계 18위, 미국 내 9위의 GDP를 나타내고 있고, 다수의 국제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주 무대로 활동하는 등 전 세계 대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또한, 실리콘 밸리 등의 IT 클러스터, UC버클리,
스탠포드 등 명문대학과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하이테크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화려한 상징물과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번영의 바탕에는 샌프란시스코만의 고유한 특징이 숨어 있다.
바로 소수자들의 도시라는 사실이다.
1900년대 초반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이미지 출처 : Library of Congress (http://www.loc.gov))
인종적 소수자의 도시
미국에서 가장 뚜렷한 인종적 다수자는 정치, 사회, 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럽계 백인이다. 반면 흑인, 히스패
닉계, 아시아계 등은 인종적 소수자로서 소득수준이 현저하게 낮을 뿐만 아니라 복지, 교육, 문화의 혜택으로부터
항상 소외되어 왔다.
신기하게도 샌프란시스코에는 유럽계 백인이 매우 적다. 2006-2008년 미국 인구주택총조사 (American Community
Survey) 자료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유럽계 백인의 비율은 45.1%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전체 평균인 65.9%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다. 반면, 인종적 소수자의 비율이 무려 54.9%에 이른다. 이중 아시아계가 31.3%, 히스패닉계가
14.0%, 흑인이 6.5%를 차지한다. 미국 전체적으로 아시아계의 비율이 4.4%, 히스패닉계가 15.1%, 흑인이 12.3%인 것과
비교할 때, 아시아계를 비롯한 인종적 소수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한 외국 출신자의 비율이 무려 35.6%에
달하고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의 비율이 45.2%로서 각각 12.5%, 19.6%인 미국 전체 평균에 비해 매우 높다. 이처럼
샌프란시스코는 인종, 출신국가, 사용언어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계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은 매우 유명한 사실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차이나타운이 샌프란시스코 도심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이곳저곳에서 쉽게 중국간판을 찾아볼 수
있듯이 지역사회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중국인이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반 금광개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금광이 개발되면서 투자자들이 몰려듦에 따라 광산, 철도 등의 건설 노동력 수요가 급격히 발생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아편전쟁이 발발한 중국에서는 남부 광둥성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혼란을 피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이 현재의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게 되면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였고 자연스럽게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882년 미국에서 중국인 이민에 제한을 두는 법이 통과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인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 인구는 급속히 늘어났다. 광둥성
출신자들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광둥어를 사용하는 홍콩인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부상한 것이었다.
자본력이 풍부한 홍콩인이 대거 이주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투자가 몰렸고 이는 중국인 사회의 발전과
도시 전체의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2010년 현재 샌프란시스코 시정부의 행정집행관의회 (Board of Supervisors)
(이미지 출처 : San Francisco Board of Supervisors (http://www.sfbos.org))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은 단순히 거주만 하고 있지 않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도 결코 낮지
않다. 차이나타운의 관광수입과 홍보효과를 통해 도시의 경제적 번영에도 기여하지만 정치적으로도 중국인 사회의 지위는
상당하다. 시정부의 최고 의결기구인 행정집행관의회 (Board of Supervisors) 구성원 11명 중 무려 3명이 중국계이다.
이들은 단순히 중국사회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핵심인물로 성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히스패닉계 2명, 이란계 1명이 행정집행관의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11명 중 6명이 유럽계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들이 단순히 인종적 소수자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도시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 (이미지 출처 : San Francisco Pride (http://www.sfpride.org))
성적 소수자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또 다른 소수자는 바로 동성연애자이다. 이들은 성적 소수자로서 일부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정신병자나 에이즈의 주범 등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공격받기도 한다.
2005년 미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전체 인구 중 동성연애자의 비율은 무려 15.4%에 이른다.
시민 6~7명 중 한 명이 동성연애자인 셈으로서 이는 미국 50대 대도시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이다. 동성커플 가정의
비율도 6.9%로서 역시 미국에서 압도적 1위이다. 이것은 단순히 동성연애자가 많이 거주한다는 사실 보다는 동성연애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6월,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와 광장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자랑(San Francisco Pride)’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1970년
이후 4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개최된 이 행사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이 중심이 된다.
2009년에는 무려 120만 명이 이 행사를 관람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성적 소수자를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축제기간에는 성적 소수자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외국과 미국 내 다른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수많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참가한다. 시정부가 직접 행사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고 다양한
종교, 문화, 정치 단체들도 참여한다.
성적 소수자의 활동은 축제 등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공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샌프란시스코 내에서 카스트로(Castro)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도시의 지리적 중심부에 위치한 카스트로의
길거리에서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각종 음식점과 상점에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전까지 북유럽 이민자가 주로 몰려 살던 곳이었던 카스트로가 성적 소수자의 중심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방부는 징집된 병사들 중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일방적으로 본국으로 돌려보냈는데, 공교롭게도 현재의
카스트로 지역에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성애자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1970년대 히피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통해 문화적으로 더욱 발전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보수적 편견과 달리 카스트로의 가로는 항상 활기가 넘치고 매우 안전하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여기저기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넘쳐난다. 어둡고 음침한 성적 소수자의 소굴이 아니라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미를 제공하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Richard Florida 作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이미지 출처 : Creative Class (http://www.creativeclass.com))
미국의 유명작가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2002년 전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창조적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을 통해 미국의 여러 대도시를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했다. 그는 현대 도시의 부흥과
잠재적 발전 가능성은 창조적 계층의 존재 및 창조적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이테크, 혁신,
다양성 등 네 가지 분야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창조적 지수(Creative Index)를 제안하였다. 이 지수에 따르면 미국 내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 중 샌프란시스코가 오스틴, 샌디에고, 보스턴, 시애틀 등을 뒤로하고 2000년대 미국에서 가장 창조적
인 대도시로 평가되었다. 항상 새로운 것에 열려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로 인정받은
것이다.
창조적 지수를 구성하는 여러 기준들 중 다양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공교롭게도 동성애 지수(Gay Index)였다. 플로리다는
동성애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용 정도가 다양한 사람과 사고에 열려있음을 상징하는 합리적인 유사척도로 인식했다. 동성
연애자 자체가 창조적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창조적 계층의 구성원들은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성에 항상 열려있다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이 도시의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건강한 샌프란시스코 (Healthy San Francisco) (이미지 출처 : New York Times (http://nytimes.com))
소수자가 살기 좋은 도시
소수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다. 소수자가 많은 도시일수록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범죄율이 높아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주류 계층인 유럽계
백인 중 상당수가 도시를 등지고 교외로 나가 살게 된 것도 도심의 하층민과 이민자를 피해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다르다. 소수자의 도시이지만 경제적으로 매우 발달했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이다. 2006-2008년
미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의 빈곤율은 11.0%로서 미국 전체 평균인 13.2%에 비해 매우 낮다.
1인당 GDP는 미국 전체 평균보다 68%나 높다. 인구의 44%가 대졸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미국 대도시 중
시애틀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2008년 기준 샌프란시스코의 강력범죄 발생률은 인구 100,000명당 845 건으로 미국 내
비슷한 크기의 도시 중 비교적 낮은 편이다.
소수자를 위한 복지정책도 발달해있다. 대표적으로, 2006년 도입된 ‘건강한 샌프란시스코 (Healthy San Francisco)' 정책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4세 이하 성인을 대상으로 시중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시정부가
직접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혜택의 범위에 제한은 있지만, 국적, 이민 상태, 고용여부, 건강상태와
관계없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살기 좋은 도시
인종, 출신지역, 언어의 다양성은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국의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과 사고에 열려있는 도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른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샌프란시스코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웅장한 금문교와 크고 작은 언덕, 빅토리아 양식의 고풍스런 주택, 체계적으로 잘 갖추어진 대중교통, 연중 10~20℃를 유지
하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만이 아니다. 다양성, 진보와 혁신, 이해와 배려 등이 바로 샌프란시스코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소수자의 삶의 터전을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갈아엎고, 출신지역, 문화, 기호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며, 경제개발의
논리 하에 획일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되었던 우리의 도시개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샌프란시스코는 그동안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대안적 모델을 제공해준다. 소수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방안을 통해
보다 살기 좋은 우리 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끝.
두번 째 글 예고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도심재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