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 작성일
- 10-09-07 16:05
정전.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리는 순간이 말이에요.
요즘은 별로 없지만 어렸을 땐 정전이 이따금씩 있었어요.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거나 암튼 빈둥거리고 있을때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온세상이 까만 어둠속에 잠겨버리던 기억이 얼핏 나네요.
그나마 좀 진화(?)된 주택에서는
간혹 비상등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근데 전 그런 비상등이 썩 좋진 않았어요.
온갖 불빛 속에 살다가 온세상이 어둠으로 변하는 것이
제겐 무언가 일종의 재미였거든요.
그런 와중에 지극히 정육점스러운 비상등이 들어오면
뭔가 초를 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차라리 파르르 떨리는 촛불의 느낌이 훨씬 좋았더랬지요.
어제밤에 집이 정전되었어요.
이 집에 산 지 정확히 1년하고도 3일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두 번째 정전이었지요.
이정도면 은근 자주 있는 편이죠?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전기공급마저 이렇게 불량스럽다니 ㅠㅠ
다행히 저희집엔 양초가 많아서
정전이 되고나서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양초 3개 정도 켜주니 아늑하니 참 좋드만요.
다행히(?) 비상등은 집안에는 없고 복도에 있었구요.
근데 예전만큼의 재미와 새로운 느낌은 좀 줄었어요.
오히려 냉동실과 냉장실에 있는
음식들이 녹아버리거나 상할 걱정이 앞서더군요.
특히 냉동실에는 얼마전 한국에서 공들여 꽝꽝얼려 공수한
각종 생선들이 모셔져 있는데 그게 녹아내린다면.....
아 생각만해도 참혹해요.
그리고 냉장실엔 제가 좋아하는 과일들이 있는데
그게 상한다면.......... ㅠㅠ
다행히 1시간 반 정도 지나서
전기는 다시 들어왓어요.
정전된 기간동안 단지 전체가 어둠에 잠겨있다보니
뭐랄까.. 일종의 섬에 와있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새로운 느낌보단
음식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이 더 앞서는게
예전과는 달라진 제 모습인가보네요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