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긴 글임요..



















제가 그 엄친딸을 처음 안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가 되겠군요.

그 아이는 말 그대로 엄마 친구 딸이었지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때 국민학교에는 매월마다 월말고사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국딩들의 가장 큰 로망 중의 하나가 바로 월말고사에서 올백,

전과목 만점을 맞아보는 일이었지요.

저는 반에서 10등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없었지만,

영광스런 올백을 맞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엄친딸은 가끔씩,

일년에 두세번쯤 올백을 놓치더군요.




초딩시절 올백에 이은 또 하나의 로망은 반장선거죠.

그 엄친딸이 저랑 알고 지낸 4년 내도록 반장을 연임하는 동안,

전 당연히도 평민으로 지냈죠. 왜 친구들은 제게 표를 주지 않았을까요.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기가 막힌 연설문을 써 주신덕에

엉겁결에 전교어린이회장을 한 건 크나큰 영광입니다만,

그 엄친딸이 출마 했었더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었겠죠?




수학경시대회라는게 있었습니다. 시대회를 통과하면 도대회에 나갈 수 있다시며,

담임선생님께서 시대회 참가자를 뽑으시는데 저도 손 번쩍 들었죠.

수학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가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그렇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빵점을 맞아봤답니다.

나 참 교과서에 있는 공식으로는 손도 대지 못 할 문제를 주면 어떡하냐구요.

그리고 얼마 뒤에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이었죠. 그 엄친딸,

운동장 앞에서 교장선생님께 도지사 상을 타더군요.





엄마들의 치맛바람으로 그 엄친딸이랑 3학년 때부터 같은 미술학원에를 다녔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죠. 엄친딸이 미술학원 다닌다는데 울 엄마가 질 수 있나요.

제가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걸 깨닫는 동안,

그 엄친딸, 스케치북에다가 비너스랑 아그리파를 거의 복사해 넣더군요.

시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를 막 나가면서 상을 타오기 시작하더라구요.





패배자의 반격입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었는데, 제가 글 쓰는 일에 소질이 좀 있더라구요.

4학년 때, 독서반 선생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수업 후에 따로 절 불러내어

글짓기를 가르쳐 주셨어요. 좋은 분이셨지요.

아직도 성함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훌륭하신 선생님 덕분에, 저는 이런저런 초등학생 문예 대회 수상식 때

엄친딸이랑 인사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저는 산문부 차상 혹은 차하이고, 그 엄친딸은 미술부 장원이지요.

장원, 차상, 차하가 무슨 뜻인지 몰랐던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전 6학년 될 때 까지 시 대회 장원을 한 번도 못해봤어요.

올백을 못해 본 월말고사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반격입니다.

6학년이 되자 저도 기어이 장원을 탔습니다.

구미시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초딩으로 인정받은 셈이죠.

그 뿐 아니예요.

그 대회 수상자 명단 어디에도 엄친딸의 이름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제가 일등을 하는 동안, 그 엄친딸이 탈락을 해버린거죠.

이 얼마나 기쁜 일이예요. 저는 그렇게 한 2주일동안 기쁨을 만끽했어요.

그 엄친딸이 제가 나간 시대회 대신 전국미술대회를 나가서

은상을 받아왔다는걸 알게 되기 전까지만요.





사실 그런 퍼주기식 문예대회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거예요.

중학생이면 이제 다 컸으니 그런 것 보다는 공부에 매진해야죠.

구미는 고등학교가 비평준화라서, 구미에서 최고로 쳐 주는 인문계 구미고등학교를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어요.

구미에서 공부 잘 하는 중딩이 갈 수 있는데의 끝은 고등학교는 구미고/구미여고예요. 

일단 구미고만 가게 되면 엄친딸이나 저나 같은 레벨인거죠.

헌데 저는 구미에 경북외고라는데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거기가 고등학교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요. 엄친딸이 거기로 가게 될 줄은 몰랐죠.






대충 보니 국내를 주름잡는 소설가는 5년에서 10년에 한 명꼴로 나오더라구요.

제가 그 한명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였어요.

저는 소설가로서의 꿈을 접고, 수능을 잘 치고 좋은 대학에를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가지기로 마음 먹었어요.





조금은 안타깝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그 엄친딸은 꿈을 버리지 않았더군요.

외고를 다니면서도 없는 시간을 쪼개어 미술학원을 다니더니 홍대 미대를 합격 해버렸어요.





제가 재수를 하면서 1년에 대략 800만원쯤 쓰는 동안,

엄친딸은 아니나 다를까 장학금을 800만원쯤 받으면서 다니더군요.





제가 군대에서 멍청한 녀석들에게 욕설이나 배우는 동안,

엄친딸은 유학을 갔더군요. 당연히 국비죠.





법대생이 된 제가 고시촌에 들어가 있는 동안,

엄마한테 다시 그 엄친딸 이야기를 들었어요.

교직이수를 해서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되었다고.

저는 뛸 듯이 기뻤어요. 정말로 기뻤어요.

중학교 선생님이면 좋은 직장이긴 하지만, 승진도 없고 스카우트도 없어요.

교감선생님이나 교육청 직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적어도 15년은 지나야 가능한 이야기지요.

한 번 선생님은 당분간은 계속 선생님인거예요.

다시는 엄친딸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 줄 알았어요.

























어떤 남자가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했는데 아버지 성화로 고대 법대를 갔대요.

근데, 법대 좀 다니다 보니 공부가 너무 재미가 없더래요.

그래서, 아버지 몰래 수능을 다시 쳐서, 이번에는 서울대 의대를 갔대요.

뭐.. 좀 비위 상하는 이야기지만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죠.

근데 그 녀석이, 예과, 본과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하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법고시에 붙었대요.

지금 사법연수원에 있다는데 의료 전문 법률가가 될거라나 뭐라나...

다시 말하지만, 전 되다가 만 고시생이랍니다.






그 얘길 왜 하는데요? 이번엔 또 무슨 엄마친구아들이에요. 하고 엄마한테 물었죠.















그 엄친딸 남친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