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드라마
- 작성일
- 10-07-26 10:27
전 원래 드라마라는 걸 잘 안 챙겨보던 사람인데
언젠가부터 이상하게도 제가 점점 드라마 덕후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암튼 각설하고 '가족드라마'에 대해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좀
짧고 짧게 끄적여 보렵니다.
우리 한국의 방송에는 참 드라마가 많습니다.
이미 막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아침드라마로 상쾌한 하루를 열고
낮에는 케이블에서 온갖 대박작 내지는 중박작들을
재방송에 재재방송에 재재재방송 해줍니다.
저녁쯤 되면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합니다.
일일 시트콤에다가 저녁시간 용 드라마도 있고
9시 뉴스 직전의 일일드라마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기다렷다는 듯이 월화극, 수목극들이 수시간동안 화면을 도배합니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주말용 드라마가 있고
낮에는 역시 월화, 수목극 재방송에
저녁과 밤에도 주말드라마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저도 그중에 한 명이지만
드라마라는 것을 소비하는 인구가 워낙 많은데다가
한류열풍으로 인해 해외에서도 우리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높은지라
드라마의 '득세'는 지금까지도 그래왓듯이 계속 지속될 것 같아 보입니다.
이러한 다양하고 많은 드라마 가운데
가장 지배적인 장르(?)는 다름아닌 가족드라마이겠지요.
아침드라마, 저녁8~9시의 일일드라마, 주말 저녁 및시간대 등
소위 이미 황금시간대는 '가족드라마'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20~30대의 인기를 먹고사는 소위 非가족드라마들은
주로 월화, 수목 밤시간이나 일일 시트콤 위주로 편성되며
일일드라마처럼 수십편씩 찍는 것이 아니라
16~24부작 정도의 미니시리즈로 기획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나라 드라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드라마가 대부분 개인적으론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20~30대 젊은층을 겨냥하기 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소위 모여서 볼 수 있는 무난한 주제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이 선정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이런 가족드라마의 전형 중 최근 화제작 중 하나로
'솔약국집 아들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토리는 그냥 착합니다.
약간의 코믹함과 재미는 기본으로 깔고
항상 한가족 내지는 두 가족의 구성원들이 주인공입니다.
으레 자녀는 네 명 정도로 다양하게 해주어서 이야기의 풍부함을 더해줍니다.
또한 꼭 노부부가 등장하지만 갈등의 중심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꼭 두 집안이 부모, 자식, 연애, 친구 등 두 가지 이상의 일로 얽힙니다.
남녀의 관계는 항상 모범적이고 결혼해도 서로 존대합니다.
아이들은 '아이 좋아~' '와아~ 신난다' 등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대사를 읊어대기만 합니다.
전 이렇게 '현실성 떨어지는' 착한 가족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판에 박힌 착한 가족드라마들이 판을 치다보니
뭔가 차별화 하겠다고 나온 것이 소위 막장 가족드라마입니다.
말로는 가족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알고보니 배다른 형제, 불륜, 혼전 관계로 생겻던 아이, 쓸데없는 여배우 노출, 옛 애인의 복수극....
현재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가족드라마에도 지겹도록 등장합니다.
소위 착한 가족드라마를 표방하고 시작한 드라마들도
시청률 경쟁에서 밀리고, 사람들 입에는 오르내려야 하겠고
착하게만 나가자보니 소재도 떨어지고
결국 어찌하다보니 막장 요소가 가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사람들이 보지를 않게 되고
이는 광고수입의 하락으로 이어져서
결국 방송사와 제작사의 수익악화를 불러오며
배우들의 경력에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전 착한 가족드라마, 막장 가족드라마가 참 재미없습니다.
이미 소재는 여기저기서 다 욹어먹었고 플롯의 설정은 비현실적이기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보면서 정말 바보같고 말도 안되는 주인공들에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착하게 나갈거면 사극같이 교훈적이고 사필귀정한 스토리로 나가든가
아니면 아에 막장으로 나갈거면 '아내의 유혹'처럼 제대로 꼬아보는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미 대중은 제대로 착하고 교훈적인 작품과 제대로 막장인 드라마들을 접해서
가족드라마의 이런 어지간한 시도에는 별로 감흥도 느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드라마라는 것이 설 자리는 조금씩 위태로와 보입니다.
불의의 사고나 가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혼자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대부분 가족이라는 일종의 제도 및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소재가 대중의 공감을 얻기는 쉽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한두번쯤은 고민도 해보았을 것입니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가족드라마에게 기대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고민입니다.
가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생각해볼 거리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의 역할은 무엇인가?
가족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등의 역할과 관계는 무엇인가?
............
현재의 대부분의 가족드라마들은 이런 '가족'에 대한 고민과 주제없이
'가족'을 소재로만 다룰 뿐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고
전달하려고자 하는 메세지도 거의 없습니다.
그저 북치고 장구치는 이야기만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 한 번 쯤 생각해보게 되는
'주제가 있는 가족드라마'는 정말 요원해보입니다.
이런 와중에 그래도 눈에 띄는 가족드라마는 있습니다.
바로 김수현 작가의 작품들입니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족 내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담아냈습니다.
소위 휴가를 가겠다는 어머니의 폭탄선언은
착한 드라마나 막장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단순한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우리 가족 내에서 어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의미를 갖고 있는지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누려왓는지 등을 보여줍니다.
시청자들에게 '가족 내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의미를 한 번 쯤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현재 방영중인 김수현의 또다른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물론 가족드라마의 특성상 4남매가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처음부터 계속 화제가 되고 있고 작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바로
동성애자인 맏아들의 커밍아웃 문제입니다.
'개인의 취향'에서 다뤗던 어설픈 동성애와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동성애의 사회적 의미도 살펴보지만
무엇보다도 동성애라는 것을 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진솔하고 깊이있는 고민을 담아냅니다.
약간 논의를 확장시켜보면
우리집 자식이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면
가족으로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듬어 줄 수 있는지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가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려 합니다.
작가는 무조건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일방향적이고 획일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적 사회 정서상 이를 정신병으로 취급하는 사람들,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마음으로는 동의를 못하겠다는 사람들 등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가족구성원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솔직한 생각과 고민을 서로 공유합니다.
아.. 쓰다보니 또 길어졋네요.
결국 '가족드라마의 역할은 무엇인가'로 논의를 좁혀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소 비현실적인 그저 착하기만 한 드라마를 통해 모범적(?)인 가족상을 확립하여 계도하는 것인지
극도의 자극적인 스토리를 통해 가족의 관계를 꼬고 또 꼬아 시청률에만 매진하려 하는 것인지
현재까지 대부분의 가족드라마의 역할은 불분명 하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다소 비판적으로 봅니다.
가족드라마의 역할은 작가와 제작진이 가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풀어내어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전통적인 가족구조 안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가족의 문제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없는 가족드라마는 약간 세게 말해
깊이가 없는, 그저 탤런트를 밥줄이나 유지시켜주는 수단이자 전파낭비에 불과하지
전혀 기억에 남지도 않고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갈 뿐인 것 같습니다.
암튼... 핵심은
"주제의식 있는 가족드라마를 만들자" 입니다.
너무 긴 글 죄송합니다 ㅠ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