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 SSCI, A&HCI
- 작성일
- 12-03-31 01:52
SCI, SSCI, A&HCI
무슨 암호 같기도 한 이 용어들을
최소한 어디선가 한 번 보신적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일단 해독(?)부터 해드리겠습니다.
SCI: Science Citation Index
SSCI: Social Citation Index
A&HCI: Arts & Humanities Citation Index
다우지수, 코스피지수처럼 무슨 지수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
쉽게 말하자면 국제 학계에서 소위 공신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학술지들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SCI는 과학기술 분야 (이것의 확장판인 SCI-E도 있습니다)
SSCI는 사회과학 분야, A&HCI는 예술 및 인문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중
가장 권위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한 학술지가 SCI에 등록이 되어있다고 하면
"아~ 이 학술지는 좋은 것이구나"라고 보시면 어느정도 맞습니다.
암튼 요것을 왜 갑자기 이야기드리냐면
요즘 이것이 연구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
즉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들의 시장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x년간 SCI (또는 SCI-E), SSCI, A&HCI급 논문 x편 이상"
이런 조건들이 국내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평가하거나 신규 교수 채용시에 내거는 조건입니다.
사실 분야마다 차이는 좀 있습니다.
과학기술 분야는 기준이 좀 높은 편이구요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좀 낮은 편입니다.
국내에서 주로 공학에 속해있지만 실제 학술지는 SSCI로 분류되는 제 분야는
요즘 SSCI급 논문 2~3편 정도 개제하면
국내에서 큰 무리 없이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
대략 형성되고 있는 시장가격(?)입니다.
암튼 이런 추세가 오래 된 것은 아닙니다.
교수들이 공부도 안 하고 놀고 먹는다는 비판이 있어왔고
이것이 어느정도 사실이었던 지라
학계는 부랴부랴 교수들을 공부시킬 방안을 찾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다보니
결론지은 것이 바로 권위있는 학술지, 즉 SCI, SSCI, A&HCI급 논문 게재편수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었더랬지요.
취지는 좋습니다.
공부 안 하고 흥청망청 놀면서 대충 연구하는 교수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학문적 수준을 좀 더 끌어올리는 데에도
어느정도 기여는 했다는 평가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요즘 좀 안 좋은 영향이 있더랩니다.
교수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서, 신규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서, 또 박사과정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계량화된 기준인 논문 게재 편수가 가장 적절하다보니
실제로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이를 도입하게 되었고
대상자들은 이로 인해 단기간에 성과를,
그것도 많이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연구자나 교수로서의 윤리와 직업정신 보다는
당장 논문 몇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중요해지다보니
그중 일부는 압박감에 표절이나 자료조작 같이 부도덕한 행위도 일삼게 됩니다.
교수들은 안 짤리고 승진하기 위해서 연구성과물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학부생들이라고 합니다.
연구에 치이다 보면 우선적으로 떨쳐내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밥줄인 프로젝트를 끊기는 쉽지 않습니다.
학계에서 먹고 살려면 여기저기 대외활동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상대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학부수업을 등한시 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대학원 수업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나 봅니다.
게다가 일부 대학의 경우에는
학과, 학부, 단과대 별로 할당된 SCI, SSCI, A&HCI급 게재 편수가 있다고 합니다.
즉 XX학과는 201x년도에 SCI, SSCI, A&HCI급 논문 몇편을 게재했느냐가 그 조직의 평가 기준이랍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교수들은 나이든 교수들 몫까지 써줘야 하는 상황도 생기나봅니다.
수업을 잘하고 학생들을 잘 지도 한다고
조교수에서 부교수되고 부교수에서 정교수되는 것이 아니라
SCI, SSCI, A&HCI급 논문을 몇 편 썼느나갸 더 중요해져 버렷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구글에 SCI, SSCI, A&HCI이라고 검색해보면
첫 페이지부터 주로 한국과 중국의 웹사이트들이 뜹니다.
실제로 SCI, SSCI, A&HCI급 학술지들이
한국과 중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영국이나 미국, 기타 유럽 국가들이 중심인데 좀 신기합니다.
어쩌면 이는 한국과 중국에서만
SCI, SSCI, A&HCI급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친하게 지내는 한 현직 교수님의 이야기를 잠깐 전하자면
새로 교수를 채용하거나 기존 교수의 승진을 심사할 때
정성적인 평가와 정량적인 평가를 종합해서 최종 결정하는데
정성적인 평가는 아무리 시간을 많이 들이고 해도
특별히 사람이 이상하지 않는 한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계량화되고 객관화된 기준에 기반한
정량적인 평가가 결국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답니다.
물론 그 기준은 바로 SCI, SSCI, A&HCI급 논문의 게재 편수구요.
그러다보니 다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실제로 SCI, SSCI, A&HCI급 학술지 중에도 알고보면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SCI, SSCI, A&HCI급이 아닌 학술지 중에서 수준이 매우 높은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를 노리고 일부러 수준이 낮아서 게재되기가 쉬운
SCI, SSCI, A&HCI급 학술지만 노리는 이들도 매우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근데 이런 학술지에 가보면 은근 한국, 중국인 저자들이 많습디다.
제가 알고 있는 지인들도 그렇게 해서 교수로 임용된 경우도 있구요.
한국에서 대학원과정에 다니고 있는 제 후배들도 이런 압박에 시달린답니다.
박사논문을 쓰고 나가려면 국내 학회지에 x편 이상
SCI, SSCI, A&HCI급에 한 편 이상은 쓰라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맨날 논문만 써대고 있습디다.
오히려 우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 텍스트들은 멀리한채
그저 분석만 하고 있더군요.
또 재미있는 것이 저희 분야가
국내에서 SCI, SSCI, A&HCI급 논문을 쓴 역사가 별로 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도 SCI, SSCI, A&HCI급 논문을 쓴 교수의 숫자가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제자들에게 SCI, SSCI, A&HCI급을 요구합니다.
물론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닌데
최소한 SCI, SSCI, A&HCI급 논문은 어떻게 쓰는 것인가 지도도 없이
막무가내로 쓰라고 하는 것을 보면
한달에 차 몇대 팔라고 압박하는 자동차 영업의 세계와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래 다른 글에 금방석님의 댓글에서와 같이
연구라는 것은 좀 길게 보고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실제로 영미권과 유럽에서는 분야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짧은 논문 보다는 본인의 수년간의 연구성과가 담긴 책을 더욱 높게 평가하기도 합니다.
특히 인문 사회학 분야에서는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학계에 정식 데뷔하는 과정이라고 보기도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단기간에 뭔가를 해보려는 우리의 풍토가
아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네요.
SCI, SSCI, A&HCI의 순기능도 있으니
바뀌긴 어렵겠죠? 후후
전 그럼 이만 논문 "생산"하러~~ 총총총
이라고 말하면서 베팍에서 댓글 놀이하며 계속 서식하겠지만요 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