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선생님 이야기
- 작성일
- 13-05-15 16:33
여전히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은 학창시절 모두 다 털어서 한 분 계시네요.
중학교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전혀 공정하지 않으신 분이었어요.
여러 명이 지각을 해도 꼭 나만 10분정도 더 벌을 받았고
같이 잘못을 해도 꼭 내 가방만 뒤지셨었죠.
다른 애들 3대 맞을 때 난 5대 맞은 것 같고
분명 어제 내 짝한테는 뭐라고 안한 것 같은 일로 꼬투리를 잡아서 굳이 가방을 뒤지고 뭔가를 발견해 내고 또 야단치고
내 짝꿍 가방에서 담배가 나와도(물론 제 거였지만) 혼나는 건 나.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아무런 권리도 없는데 미술학원 다니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너 미술학원 핑계로 돌아다니다 걸리면 알아서 하라는 으름장도 놓고
중 1이 끝나면서 이제 지긋지긋하던 저 선생님과도 끝이겠구나, 라며 기뻐하는데
반 배정 조율 다시 해서 결국 나를 그 다음 해에도 당신반으로 집어넣으시고.
소풍을 가면 무서운 목소리로 작은 핸드백과 힐을 위해 도시락은 안 싸오던 나와 친구들을 집합시켜놓고는 꿀밤 쥐어박으며
우리를 위해 따로 싸온 5단 찬합을 열어 밥먹으라고 하시고
학생주임선생님이 어떻게든 저를 잘라버리겠다고 했을 때
학생주임을 찾아가 이 아이가 한 번만 더 사고를 치면 당신이 사표를 쓰겠다고 하시던 분.
중 3 때 다른 담임선생님을 만나 역시나 가열차게 사고치고 다니는 데
어느날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사고는 쳐도 좋지만 눈빛이 변하지는 말라고.
네 눈이 요즘 회색이 되어가려고 한다고. 예전처럼 니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잘못한 것 없다고 따지라고. 왜 그냥 대답만 하고 돌아서냐고.
너의 초롱초롱하고 검은 눈빛을 잃지 말라고.
그렇게 나를 잡아주신 분.
졸업식날 당돌하게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선생님이랑 맞담배 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웃으시며 꿀밤과 함께 내 주머니 속 담배를 압수해가신 분.
흠.
보고싶네요.
조만간 찾아가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