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 작성일
- 13-05-28 22:36
참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는 제가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사실 없는데요.
나이차이나 선후배관계, 선생과 제자사이 등 그런 관계에서 강요되는 소위 말하는 예의범절이란 이름의 권위주의를 싫어하기도 하고
어르신들이건 선생님들이건 선배들이건 뭐건 누구 앞에서도 뭔가 해야 할 말은 하고 틀린건 틀렸다고 해야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근데 요즘 제가 자주 느끼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한국 사람들 참 예의 없다' 네요.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애들 참 예의없다, 고 해야하겠죠. 주로 어린 친구들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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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하나. - 오디션.
아까 낮에 올린 글에 언급한 그 친구를 계속 데리고 가냐, 마냐, 하는걸로 제작사 대표님이랑 얘기를 좀 했어요.
그리고 들은 얘기.
"요즘 애들이 그렇더라고요. 오디션 보겠다고 서류 넣고 인터뷰 날짜랑 시간 잡아놓고 연락도 없이 그냥 안오는 사람이 50% 에요."
어쩌다 간혹가다 그런 황당한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데에서 놀랐고
자기가치를 그렇게 쉽게 훼손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배우라고 한다는 데에서 약간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너무나도 상식적인 예의, 책임의식에 대한 부재가 이렇게까지 만연한 건 교육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디션 당연히 안 가거나 못 가거나 자기 선택이고 그럴 수 있지만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 한 번 하는 게 누가봐도 상식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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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둘 - 택시아저씨 지못미.
음. 생각해보니 또 오늘 안 온 그 친구얘긴데
어제 연습에 와서 했던 얘기가
그 전날 술먹고 택시타고 집에 갔는데 (대학로에서 마셨고 집은 구리임)
기사아저씨가 톨게이트를 지나느라 일단 톨비를 달라고 하면서 정신이 없었다나 어쨌다나
여튼 2만원 넘는 택시비 받는 걸 깜박하고 그냥 내리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그냥 내렸다는 얘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하더라고요.
돈 안받은거야 기사아저씨 실수니 그 애가 그냥 내린 것까지 뭐라 하긴 그래도(뭐, 제 개인적인 양심은 그냥 내리는 것도 싫긴 합니다만)
그게 뭐 자기가 잘해서 공돈 생긴 것 처럼 또 자랑할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란.
새벽에 고생하고 돈도 못 번 기사아저씨 생각하면 좀 불쌍하고만 언질 했더니 이언니 뭐야, 라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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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 화장을 고치고.
이래저래 멘붕이 와서 파리에서 가장 친했던 언니야랑 통화를 하는데
이 언니가 한국에서 와서 하는 주된 일이 불어과외거든요.
위의 오디션 얘기를 해주니 처음 과외 잡을 때도 그런 일은 부지기수라 연극쪽에서 그런다는 거 놀랍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언니가 들려주는 요즘 학생들 이야기...
그룹과외를 하는 애들이 있는데
아주 천진난만하게 선생님 앞에서 자기가 쇼부쳐서 과외비 깎았다고 애들한테 얘기하며 잘난척 하는 건 기본이요,
수업중에 화장을 고치는 아이도 있다더군요.
언니가 너무 어이없어서 웃었더니
"왜 웃으세요, 지금 나땜에 웃는건가? ㅇㅇ? (말똥말똥)"
이러더란. 같이 수업 듣는 애들도 딱히 화장고치는 친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보였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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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가 나이를 먹긴 먹었네요.
내가 아닌 타인에게 예의 없다는 느낌을 받는 날이 오다니
이렇게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는건가본데,
참 받아들이기 힘든 태도들이에요.
앞으로 이게 당연해지고 이런 태도들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게 꼰대처럼 보이게 되는 사회. 상상만해도 끔찍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