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늦었습니다.
- 작성일
- 14-01-24 22:24
"평소처럼 성당에서 작업을 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연하장을 보냈을 뿐, 누
구에게도 새해 인사를 가지 않았다. 오늘도 쉬지 않고 작업을 할 생각이다.
오, 행복한 삶! 내 외로움을 하늘이 보상해 주리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까다로운 정부(concubine)처럼 온갖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난 넉 달 동안, 나는 새벽이면 벌떡 일어나 사랑하는 정부를
만나러 가듯이 작업장을 향해 달렸다. 예전에는 쉽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이
제는 끔찍할 정도로 어렵게만 생각된다.
그러나 이 끝없는 싸움은 나를 쓰러뜨리기보다는 다시 일으켜 주고, 나에게 절
망을 안겨 주기보다는 나를 다독거리면서 용기를 북돋워준다."
- <들라크루아, 위대한 낭만주의자>에서, 1861년 1월 1일, 들라크루아의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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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라는 단위로 뭘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지겨워졌습니다.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기분으로 뭔가를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
한때는 그걸 즐거워하며 맞이했던 것 같은데 이제 아득한 기억이자. 막연히 그리운 감정이 되버린지 오래.
살면서 무언가 거창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하지만.
실제론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해 놓은 일들의 보잘것없는 합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도 이미 2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
우연히 옛 일기를 들추다가 어느 해 1월의 일기를 보았는데.
약간은 상기된 느낌. 나름대로 신중함으로 포장한 포부와 상큼한 기대. 1월의 일기는 글씨체부터 다르더군요.
그렇게 당하면서도 늘 새해초입엔 왜 그리 순진하게 굴었어야만 했나.
새 달력이 걸렸다는 것만으로. 세상까지 새것이 될 거라는 망상에 감염되고야 마는.
뭔가를 순진하게 기대한다는 건 끔찍스런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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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유난히 가슴 답답하고 쓸쓸한 일들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암울했던 이 해가 어서 가고 새해가 오라는 식의 말들 또한 어김없이 들려왔고.
하지만 2013년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고용불안정. 돈과 힘의 논리로만 설명되는 사회. 멀어지는 민주주의를 잡아두기 위해 촟불을 든 우리가 더이상 세상의 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그럼에도 수구주의와 냉소주의. 정신적 노예근성으로. 진보에 대한 아무런 비전 없이 개나소나 비관주의를 전파하는 꼴은 더욱 쓴맛을 다시게 할뿐입니다.
뭔가 하려고 했고. 지금도 뭔가 하려는 사람들.
진보와 발전을 믿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현실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선 '징그러운 한 해. 어서 가 버려라' 는 식의 말은 결코 나오지 않을테죠.
부족하고 미흡한 점. 실천의 과정에서 당장 적용해 나가야 할 일들이 쌓여 있을 것이기에 지독한 비관주의와 냉소 같은 건 깃들 여지도 없을겁니다.
본래 시간의 흐름엔 아무런 눈금이 없는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조직하고 운영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격절을 만든 것.
시간의 격절이 임의적인 것일진대. 결국 새해를 올해보다 한결 낫게 만드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뭔가 기운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따위의 기대와 설렘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새해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그리고 어느 해나 마찬가지로)매우 짧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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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지내오면서 해결한 것보다 풀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남아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타박상을 입고 아물기도 하고 생채기 역시 남았지만.
올해도 세상은 나를 이렇게 멀쩡히 살려줬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고.
아주 뚜렷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잡혀 있는 목표와. 상반기 업무가 벌써부터 빼곡하지만.
그 안에 내가 성장 할 수 있는 기회와 좋은 사람을 건질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더불어 14년 베팍을 통해서도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득남 득녀. 누구의 승진. 여성유저들의 가입인사. 커플들의 헤어졌다는 말도 좀 듣고.
누구 하나 주눅들지 않도록 사랑도 하고 성취도 이루면서.
고루고루 평안했으면 합니다.
새로울 것 없는 소망이지만.
전부. 진심입니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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