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제가 이사오기 전에 살던 작은 동네에 카페가 두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프랑스 스낵이 맛있는 프렌치 카페였고 다른 하나는 BATW라는 체인점이었는데 두 곳 모두 굉장히 잘되었죠.
 
후자는 체인점임에도 불구하고 지배인이 무척 열정적이어서 토요일에는 재즈 연주도 하는 등 이것 저것 신경을 많이 썼었어요. 이사간 이후에는 간 적이 없었는데, 최근에 카페를 더 이상 체인점이 아니라, 직접 오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어요.

야외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모습의 개들을 이끌고 백인 여자가 다가왔어요. 주인에게 물어보니 세마리 중 둘은 놀랍게도 한국에서 온 개들이라고. 네, 진돗개 백구였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멕시코에서 구조견으로 쓰이던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는데 진돗개들(모녀관계)에게 밀려서 기가 죽어있는 상태. 엄마개에 몇번 도전도 한 모양이지만, 진돗개를 이길 수 있었겠어요?

누가 봐도 엄마 진돗개가 그 무리의 알파(리더)였죠. 근엄한 모습으로 내가 이 무리의 퀸이라는 걸 알리며 제 옆에 점잖게 앉아 쓰다듬을 독차지했죠. 한국말도 알아듣고 한국인을 좋아한다네요 ㅋㅋ




다른 개들에게 공격성이 강한 진돗개를 둘이나 이끌고 산책을 가는게 참 힘들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는데 엄마개만 다른 개들에게 공격성이 강하다고 하더라구요. 어쩌면 딸은 혼혈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여간 주인이 엄마개의 남다른 충성도, 모성애(개를 키울만큼 키운 사람일텐데 이만큼 모성애가 깊은 개는 처음 봤대요), 책임감을 한참 설명하는데 속으로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좀더 늑대에 가깝고 사회성이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지만, 진돗개의 별다른 충성심은 애견인들에게 무척 매력적이니까요.



진돗개를 키우게 된 이유도 인상적이었는데, 원래는 한국인 주인이 있었나봐요. 근데 개 산책을 전혀 안시켜서 개가 우울증에 빠져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백인 여자가 대신 안타까운 마음에 대신 산책을 시켜주게 되었고, 한국인 주인이 한국을 방문한 사이에는 맡아주었답니다. 진돗개의 야생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서도(별장에 데려가서는 좀더 풀어주었다는군요) 많은 사랑을 준 모양이에요. 그래서 어느 새 주인보다 그 여자를 따르게 된거죠. 아시다시피 진돗개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특성이 있는데 어느 이후로는 돌아가지 않게 되었답니다.

한국인 주인은 그 개가 배신했다고 그랬다지만, 이 이야기에서 누가 먼저 배신한 것이냐는 뭐 뻔하지 않나요?



이 곳에서 좀더 선진화된 애견 문화를 경험하다보니 개 관련 논쟁들을 볼 때마 늘, 한국의 애견문화가 아직은 성숙하지 못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도 그 예가 될만한 것을 들은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