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어제 스윙맨님 글에 보태어서.
- 작성일
- 13-08-19 12:45
이건 제가 정말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떤 교수님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퍼온건데
어제도 얘기 나온 것 처럼 참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정신이 없다보니
본인은 그냥 끄적끄적 쓰시는거지만 저같은 사람들한텐 엄청 재미있는 3분짜리 강의같달까.
좋은 글이고, 알아듣기도 쉽고 해서 퍼왔어요.
이집트 군부는 일종의 생물이란 말이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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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세력의 대표로 구국전선을 이끌며 무르시 축출에 군부와 손을 잡았던 엘바라데이는 오늘 부통령직을 사퇴했다. 그가 이집트 군부의 속성을 몰랐다면 무능했던것이고, 알면서도 군부와 협력하였다면 군부를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의 자신감은 오산이었다. 오점을 남긴 셈이다.
이집트 군부는 일종의 '생물'이다. 흔히들 무바라크가 군부의 수장이고, 무바라크를 머리로 그동안 일사불란하게 한몸으로 움직여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작 진성 군부세력은 집권 후기 무바라크와는 달랐고 또 싫어했다.
이집트 군부의 역사는 1952년 7월 파루크 왕정을 몰아내고 집권한 나기브와 낫셀의 자유장교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낫셀이 주도하던 자유장교단은 반영의식으로 구성된 소수의 훈타였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 (1차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스스로 메시아니즘을 갖게 된다. 그리고 1952년 집권한다.
낫셀, 사다트, 무바라크를 거치면서 군부는 60년동안 이집트 정치 그 자체였다. 소위 Stratocracy의 전형이었다. 계속 계엄체제를 유지했다. 시민사회의 통제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상황하에서 국가의 거버넌스와 법률체계, 관료제도, 공공기구 등은 모두 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비지니스, 문화, 예술 등 사회전반 섹터에 군출신의 네트워크가 스며들어왔다. 마치 암세포가 전신에 퍼지듯 군부는 이집트 전신 세포속에 스며들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독립된 신경망을 가진, 즉 이집트 내의 또다른 이집트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이집트 자신이라 믿었다. 다양한 사회 부문이 견제하고 협력하며 하나의 이집트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군부가 이집트고 이집트가 군부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 이집트는 항상 앞서 깃발을 들었고, 이 과정에서 나름 이집트 군부는 아랍의 핵심이라 믿게된다. 특히 수에즈 전쟁이후 낫셀이 아랍의 별이 되자, 이집트 군부는 낫셀과 자신들을 동일시 하게 된다. 이집트의 안보뿐 아니라 경제 및 국가발전도 자기들이 끌고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선지자적 사명감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신직업주의이다.
이들에게 우상은 낫셀이었고, 불편한 존재는 무바라크였다. 애초에 사다트는 낫셀과 결별하면서 군부의 핵심 인사들을 대거 숙청했었다. 자기 세력들로 대체했다. 그러면서도 군부의 지지를 잃지 않았었다. 그는 교활할정도로 군부를 꿰고 있었고, 무엇보다 낫셀과 함께 자유장교단을 이끌었던 정통성있는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다트나 낫셀은 모두 지상군 (육군) 출신이었다는 것.
반면 무바라크는 사실 핵심 군부세력은 아니었다. 다만 사다트가 권력의 안위를 위해 지근거리에 야심있는 사람을 두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공군 조종사 출신인 무바라크를 껍데기처럼 부통령으로 임명해 놓았던 터였다. 그러다가 무슬림 형제단에 의한 사다트 암살이 일어나고, 서열상 2인자였던무바라크가 권좌에 오르게 된다. 군부의 핵심세력은 마뜩찮았다. 일단 무바라크는 공군 출신이었다. 그리고 성골이라 일컫던 자유장교단 출신도 아니었다. 정말 우연히 권좌에 올랐기에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군벌내 파벌의 미묘한 역학구도를 간파했다. 그는 견제와 균형을 통해, 때로는 압박과 회유를 통해 자신의 정치를 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간신히 사다트때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으로 가져다 놓았는데 자칫 다시 낫셀의 민족주의로 이집트가 회귀할 경우 반미로 전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미국은 무바라크에게 정성을 들였다. 1979년 이란혁명과 소련의 아프간침공을 경험하며 중동지역에서 대소봉쇄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졌던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 무바라크와 함께 갔어야 했다. 어쩌면 지난 22년 무바라크 정권 유지 및 통치의 핵심은 미국의 지원이었는지 모른다.
군부의 핵심세력, 특히 육군 출신 인사들은 무바라크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반무바라크 세력은 군 곳곳에 잔존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와중에 무바라크는 자기의 둘째 아들 가말 무바라크에게 권력을 양여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군부는 불편했다. 무바라크까지만 해도 그래도 공군이긴 하지만 군출신이었다. 군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가말의 경우 경제인이다. 군을 전혀 몰랐다. 오히려 가말은 공공연히 군부 인사들을 타락하고 무능하며 기득권에만 안주하는 이들이라 비판하고 다녔다. 무바라크는 가말을 전폭 지원했다. 그에게 집권당 사무총장을 맡겼고, 2007년 가말은 자신의 친분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했다.
이 내각을 본 군부는 경악했다. 대부분이 유학파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나 자유주의 성향의 전문직들이었다. 대개가 반군부 인사들이었다. 이집트를 개혁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었고, 그 첫걸음이 군부 척결이라고 보았던 이들이었다. 군부 세력은 무바라크에게 연신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나 이미 무바라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아들을 후계로 세우려했던 터, 군부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를 알게 된 가말은 더욱 군부 견제에 나서고...
이 와중에 아랍 정치변동이 일어난다. 해방광장에 시민들이 모이고 무바라크의 하야를 요구하게 된다.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사람들은 무바라크가 군부를 동원해서 시위대를 쓸어버리면 대량 학살이 곧 일어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두려워떨었다. 그러나 의외였다.
군부는 오히려 무바라크의 하야를 요구했다. 군부는 해방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발포하지 않고 오히려 경찰과 대치했다. 평화의 수호자처럼 행동했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군부는 평화를 사랑하는 깨인자들이란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군부의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다. 철저한 계산이자 도박이었다. 군부는 촉수가 살아있는 조직이고 이집트 내부에 속속들이 신경망이 펼쳐진 조직이다. 그들은 어차피 무바라크가 지속되면 가말로 정권이 넘어갈 확률이 작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 경우 군부는 궤멸된다고 보았다. 이 상황에 시민 혁명이 터지자 군부는 오히려 시민 편을 들면서 ‘오래사는 길’을 택했다.
당시 내 판단으로는 군부가 당분간은 전면에 안나서고, 뒤에서 거중조정을 하는 역할을 당분간 수행할 것이라 여겼다. 자유주의, 세속주의 세력중 만만한 인사 하나 택해서 정보와 자금 리소스를 제공하고 비밀 지배연합을 형성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무슬림 세력이 약진하고, 급기야 집권하면서 판이 틀어졌다. 헌법 제정과정에서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치고 나갔던 것이다. 군부는 사실 이러한 국가성격이나 종교성에 대해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이슬람 정부가 최종 타겟으로 삼았던 것이 군부의 기득권 해체이고, 종국으로는 ‘생물 군부’의 머리치기였음을 군부는 감지했던 것이다.
다시 나선 군부는 구국전선의 엘바라데이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무르시 축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최근 몇일 무르시지지 시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던 군부의 대응은 지난 무바라크 축출때와는 판이했다. 당시 군부는 시위대 편을 들었고, 이집트 국민들의 피흘림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호하게 발포했고... 시민들이 죽어갔다. 외신 기자들도 죽었다. 급기야 엘바라데이는 군부와 결별을 선언한다.
앞으로가 문제다. 한번 뒤로 물러나서 도광양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은 군부의 속성을 잘 몰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옆에서 자세히 보았다. 존 케리 미국무장관은 군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사실 이 양반은 원래부터 이집트 군부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군부의 마스트마인드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의 행보를 놓고 꽤나 골치아플 것이다. 전면에 나설수도, 다시물러날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봉착했다. 시민의 생명은 그만큼의, 아니 그 수십배의 정치적 책임과 등가이다. 그 책임을 고스란히 군부가 업었다.
자유주의 세력도 황망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약자를 옹호하게 마련이다. 최근의 과정에서 전집권세력 무르시 일파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동정을 호소하며 거리에 나서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가 다시 치루어지는 날... 어떤 이합집산 속에서 정치판이 만들어질 것인가.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이가 유의미한 권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불확실하다. 오히려 군부와 손을 잡고, 시민 500여명이 죽어간 오늘의 이력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은 각을 세우더라도, 이슬람 정부와 손을 잡았어야 했다.
그 안에서 피터지게 싸우더라도 군부와 손을 잡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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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더. 이건 그 이후 훨씬 더 개인적인 느낌으로 쓰신 글인데 이것도 좋아서 퍼와봅니다.
상식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인 것을 간과했는지 모른다.
민주화된 우리나라도 정부가 바뀌면 이전 세력의 관성이 작동하지 않던가?
1952년부터 2012년까지 60년 계엄통치.
무바라크 하야때까지 단 한순간도 권력을 놓지 않았던 이집트 군부.
60년간 이집트 곳곳에 자기 철옹성을 세워놓았던 그들.
이집트 현대정치사에는 군부정치말고는 없었던 지난 날들.
그들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지난 60년간 요식행위에 불과하던 '선거제도'를 통해 급작스레 당선된 이슬람 세력, 그것도 통치 경험이 일천한 무슬림 형제단에게 순순히 무기를 내어놓고 문민통치를 수용, 정부에 복종할 수 있을것이라 믿고 있었다는 점이 어찌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애초부터 이 수순이었다.
때를 기다려왔던 것.
덧. 물론 처음부터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라고 예측은 했고, 글도 그렇게 써왔다. 군부가 어떤 형태로든 자기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후에서 머리를 쓸거라고는 생각했다. 때를 살피다가 어느 순간 지배연합을 형성, 군부 조합주의 구도를 만들 가능성은 예상한 바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오고,
이렇게 대놓고 총쏠줄은 몰랐다.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인 것을 간과했는지 모른다.
민주화된 우리나라도 정부가 바뀌면 이전 세력의 관성이 작동하지 않던가?
1952년부터 2012년까지 60년 계엄통치.
무바라크 하야때까지 단 한순간도 권력을 놓지 않았던 이집트 군부.
60년간 이집트 곳곳에 자기 철옹성을 세워놓았던 그들.
이집트 현대정치사에는 군부정치말고는 없었던 지난 날들.
그들이,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지난 60년간 요식행위에 불과하던 '선거제도'를 통해 급작스레 당선된 이슬람 세력, 그것도 통치 경험이 일천한 무슬림 형제단에게 순순히 무기를 내어놓고 문민통치를 수용, 정부에 복종할 수 있을것이라 믿고 있었다는 점이 어찌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애초부터 이 수순이었다.
때를 기다려왔던 것.
덧. 물론 처음부터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라고 예측은 했고, 글도 그렇게 써왔다. 군부가 어떤 형태로든 자기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후에서 머리를 쓸거라고는 생각했다. 때를 살피다가 어느 순간 지배연합을 형성, 군부 조합주의 구도를 만들 가능성은 예상한 바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나오고,
이렇게 대놓고 총쏠줄은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