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1998년부터 만년 최하위 오합지졸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주를 맡아 자신의 경영철학을 펼치고 있는 빌리 빈의 일화를 다룬 영화 <머니볼>.
이 영화는 실패와 성공을 오고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다룬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빌리 빈은 원래 촉망 받는 야구 선수였는데 실패를 받아들들이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태도 때문에 슬럼프에 빠집니다. 결국 선수 생활은 접고 스카우터와 구단주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후 과학적인 데이터와 경영 시스템으로 적은 돈을 투자해서 최상의 효과를 내는 그의 스포츠 경영방식은 일대 혁신을 불러 일어키죠.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씬과 씬으로 이야기를 구성해가는 방식입니다. <카포티>로 인상적인 연출을 보여준 베넷 밀러 감독과 현재 헐리우드 최고의 각본가인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가 조화를 이룬 작품인데 네 개의 씬이 어떻게 인과관계를 이루면서 전개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번 째로 소개할 씬은 한 남자의 우울한 얼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TV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모니터를 보고있는 듯한데 너무 심각한 표정이라 부엌의 아내도 말은 못하고 남편의 표정만 살핍니다. 이때 전화가 울립니다.

"여보세요?"
"스캇 (해티버그)인가?"
"네"
"나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일세"
"통화 가능한가?"
"아... 네"
"문 좀 열어주겠나? "
"예?"
"집 앞 길모퉁이야!"

대사가 참 맛깔납니다. 한물 간 포수를 스카웃하러 온 빌리 빈의 저돌적 성격을 보여주는 대사죠. 사소하지만 재미난 장면은 이 대사 마지막에 보여주는 TV 화면입니다. 화면에 축포가 터지고 있는데 잠시 후 이 남자 인생에 대박이 터집니다.





흑인 스카우터와 함께 집을 찾은 빌리 빈(브래드 피드)이 스캇에게 야구공을 던지며 애슬레틱스 팀에 스카웃하고 싶다고 합니다. 어설프게 공을 받는 스캇은 곧 실토를 합니다. 팔을 다쳐서 예전처럼 포수를 하기 힘들다고.. 그러자 빌리가 말합니다.

"포수가 아니라 넌 이제부터 1루수다"
스캇의 답변, "여지껏 한번도 1루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도전은 항상 어렵지" 빌리 빈이 답합니다.

이 대화 과정에서 스캇을 잡은 숏 사이즈를 봐주세요. 공을 받고 포수로서 생활 끝났다고 자책할 때(2번 째 사진)와 빌리 일행이 1루수로 너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4번째 사진)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뒤의 것이 카메라가 약간 더 다가서 있지요. 대화 장면은 항상 이렇습니다. 숏과 반응 숏을 주고 받다가 이야기에 무르익을 때 카메라는 살짝 더 다가섭니다. 대화하는 사람의 감정적 공감이나 대립이 있을 때 카메라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여자 아이가 쪼르르 아빠를 부르며 달려오네요. 손님들과 아빠의 대화 소리에 잠에서 깬 것이겠지요. 별안간 스캇이 묻습니다.

"빌리, 아이가 있나요?"
(갑자기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어... 딸 아이 하나가 있지.."

이어서 빌리 일행은 계약서를 스캇에게 건내주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흑인 스카우터가 스캇의 가족에게 말하죠. "메리 크리스마스~"

네. 이 사람들 산타 클로스들이었네요. 야밤에 찾아와 선물 한보따리를 던져주고 떠나는 것이니까요.




두번 째 씬의 첫 장면은 빌리가 바쁜 걸음으로 어떤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집이 빌리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은 직감적으로 압니다. 브래드 피드가 집 앞에서 약간 어색해하며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관문 유리에는 집안의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비칩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집 안에서 빌리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데 프레임과 여백으로 빌리가 왠지 초라해 보입니다. 빌리의 전처인 케이시가 나와서 반갑게 맞아줍니다. 사실 빌리는 딸 케이시를 만나러 왔는데 딸 애가 아직 학교에서 안돌아 온 것입니다. 전처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도 브래드 피드의 연기가 뛰어난데 이런 건 화면을 직접봐야 합니다. 담담한 척 하지만 불편한 표정을 짓는게 쉬운게 아닌데 브래드 피드의 표정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거던요.



집 안 모습입니다. 집이 크고 참 좋습니다. 빌리와 전처의 새 남편이 앉아서 어색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전처가 와서 새 남편의 옆에 앉습니다. 그녀는 남편 쪽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그 기울어짐이 이제 이 남자의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죠. 자세히 보면 웃도리 색깔도 같은 그레이 계통입니다. 빌리가 앉아 있는 의자 뒤로보면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도 보이고 벽난로에 쓸 장작도 보입니다. 행복한 가정이네요. 1,3,4 사진에 전처와 전처의 새남편이 찍은 사진이 보입니다. 그런데 딸 아이 사진은 안보입니다. 빌리의 마음 속에는 아이만은 빼앗기기 싫었던 것일까요? 여기에는 안보이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 도중 빌리의 뒤로 바다가 여백처럼 들어옵니다.그 바다가 빌리의 텅비고 허탈한 감정을 간적접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아내가 묻습니다.
"팀 재정비 잘 되어가?"
"응 다시 리빌딩하고 있어.."
아내의 남편이 끼어듭니다. "지암보니와 데이먼이 떠났다면서요?"
"지암비예요. 데이먼, 이스링하우젠.." 빌리가 말합니다.
전처가 묻지요. "진짜 다 떠난거야?"
"응. 떠났어 다 끝난 일이야!"
"어쨌던 타격이 커겠네..."


이 대사들이 참 좋습니다.  예전의 아내가 "진짜 다 떠난거야?"라고 말한 것에는 빌리 주변의 사람들, 바로 아내와 딸까지 다 떠난 거라는게 암시되어 있습니다.(전처가 그런 의도로 말했다는게 시나리오 구성상 이 대사는 중의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 그래서 빌리가 손끝으로 목을 그으며, "응. 떠났어 다 끝난 일이야!"라고 말할 때, 울림이 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죠.

얘기거리가 떨어지자, '아이가 아직 안오네'하고 전처가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남편이 방금 휴대폰으로 통화했는데 곧 올거라고 대답하죠. 여기서 빌리가 약간 불쾌한 감정을 표시하죠. 12살 아이한테 휴대폰을 사줬냐고 묻죠. 아내가 어이없어하며 '그래 사줬다'고 하자, 빌리는 왜 자신에게 의논을 안했냐고 묻습니다. 그건 괜한 억지입니다. 이제 그는 아내와 딸과 같이 사는 남편이 아니니까요.

두번 째 씬은 크리스마스에 남의 집에 들렀다는 점에서 첫번 째 씬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첫번 째 씬이 밤에 우울한 분위기에서 따뜻하게 끝이 났다면, 두번 째 씬은 낮에 어색하고, 허전하게 끝을 맺습니다. 두번 째 씬에서 빌리와 전처와 그 남편과의 거리를 한번 보십시오.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첫번 째 씬은 스캇을 빌리가 지배하고 있듯이 찍었다면, 여기서는 빌리가 두 사람에게 지배 당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세번 째 씬은 악기점입니다. 딸 케이시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했던 기타를 빌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는 장면이죠. 이 장면은 참 따뜻하게 찍었습니다. 창으로부터 광선을 상당히 많이 넣었죠. 두번 째 씬도 채광은 많은데 차갑게 찍었다면, 여기서는 창에 붙어 있는 노란 색과 붉은 색 셀룰로이스 광고가 따뜻함을 주지요.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도 홈무비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두번 째 씬에서는 앞의 두 씬에 없는 음악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이 씬을 더 훈훈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딸이 아빠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데 눈을 자주 마주칩니다. 이것을 숏-리버스 숏으로 보여주는데 딸의 노래가 마쳤을 때 빌리가 감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때도 노래를 듣고 있는 빌리 빈의 숏 사이즈의 변화가 눈에 뜨입니다. 처음보다 카메라가 훨씬 다가 서 있지요. 빌리의 감정이 고조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전체 구조 속에서 이 씬을 보십시오. 첫번 째 씬에 갑자기 스캇의 딸아이가 나와서 빌리에게 딸이 있는 것을 환기 시키고, 두번 째 씬이 그 딸을 자주 볼 수 없음을 알려주고, 세번 째 씬에 가서야 비로소 딸이 나옵니다. 딸이 나오길 기다렸던 것은 빌리 빈 뿐만 아니라 관객도 기다린 셈입니다. 그런 딸이 저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네요. 노래 한 곡 듣고 갑시다.



The Show라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갈까?

떠나려 해봤지만 혼자선 자신 없어

왜 그럴까?

난 길을 잃은 작은 소녀

두려움을 남에게 보이긴 싫어

인생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난 우울해

이제 걱정은 떨쳐버릴래

이 쇼를 즐길 거야

이 노래는 빌리 빈의 처지를 읊은 거죠. 케이시가 부르는 이 노래가 끝날 때 박수소리가 들립니다(첨부한 동영상에는 빠져있음). 저도 처음에는 케이시의 노래를 듣고 악기점 손님들이 치는 박수소리인 줄 알았죠. 그런데 이 박수소리는 빌리 빈이 가슴으로 치는 박수이면서 실제 음원은 네번 째 씬과 연결되어집니다. 네번 째 씬을 보겠습니다.



빌리의 선수시절 모습이 보여집니다. 1984년 시즌이 개막되자 박수를 칩니다(세번 째 씬의 마지막 숏에서 이 소리가 나오기 시작해서 네번 째 씬으로 연결됨). 빌리 빈이 소개되고 삼진 아웃을 당하죠. 빌리는 다혈질인데 이것이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습니다. 나무 배트를 부러뜨리고 고개를 쑥이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러니까 첫번 째씬에서부터 세번 째 씬은 딸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세번 째와 네번 째 씬은 딸의 노래에 대한 답례의 박수와 함께 빌리 빈의 선수 생활 회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엔딩 씬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빌리 빈의 애슬레틱스는 고작 4천 백만 달러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 시켰고, 유명 선수들이 대거 떠난 뒤에도 그들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승수를 챙겼습니다. 이긴 경기 수는 양키스와 똑 같지만 양키스는 한 경기당 140만 달러를 뿌리며 이겼다면, 애슬레틱스는 고작 26만 달러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애슬레틱스는 우승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보스턴 레드삭스 회장이 빌리를 구단주로 영입하려 합니다. 빌리는 흔들립니다. 자신의 선택이 실패를 또 반복하는게 아닌가하고 고뇌에 빠집니다. 자신의 오른팔인 부하 직원이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어떤 선수는 홈런을 치고도 1루에 슬라이딩을 한 선수가 있다. 당신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홈런을 친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빌리는 삶을 아직 모릅니다. 그런 빌리가 차를 몰다가 문득 딸이 녹음해 준 CD를 켭니다. 이때 카메라는 빌리의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핸드 핼드로 찍습니다. 빌리의 마음의 움직임이 핸드 핼드 카메라에 그대로 느껴지는 듯 카메라가 마구 흔들립니다. 촛점이 나간 포커스는 빌리의 눈에 고인 눈물로 시야가 흐린 것처럼 보입니다. 빌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