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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이 넘게 소말리아에 억류중인 MT제미니호 선원의 가족 한 명을 어렵게 만났다. 지난 9월 정부 관계자로부터 ‘더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한국인 4명이 500일이 넘도록 구출되지 못하고 있다. 10월3일 현재 523일째다. 싱가포르 국적 화물선 MT제미니호(제미니호)에 탑승했던 선장 박 아무개씨(57)와 기관장 김 아무개씨(57), 1등 항해사 이 아무개씨(63), 1등 기관사 이 아무개씨(58) 등은 2011년 4월30일 케냐 인근 몸바사항 남동쪽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함께 납치됐던 중국·버마·인도네시아 출신의 선원 21명은 2011년 11월30일 7개월만에 풀려났지만 한국인 선원 4명만 소말리아 내륙으로 이동했다. 해적이 인질 석방금을 챙기고 한국인 선원 4명을 재납치한 것이다. 이들은 현재 소말리아 하라데레 지역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라데레는 해적들의 본거지이다.

지난 8월24일 <시사IN>은 한국 정부가 재납치된 한국인 피랍자들의 소재는 커녕 생사 여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9월10일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에서의 검색을 막은 동영상을 입수해 일부를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지난 3월15일 한국인 선원 4명이 전원 등장한 소말리아 현지 방송의 일부였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검색을 막은 것이 사실이다. 비공개건이기 때문에 영상 검색을 막은 이유를 말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간 제미니호 가족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왔다. 그런데 지난 10월2일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1등 항해사 이씨의 사위 강 아무개씨(36)를 어렵게 만났다. 강씨는 지난 9월 국토해양부 관계자로부터 ‘더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인터뷰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피랍자 가족들의 동의 하에 가족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한다고 했다.  

장인 어른 연고지가 부산이다. 부산 처갓집에 일가친척이 모여 장인 어른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토론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다들 답답해했다. 

납치 소식을 지난해 12월에야 알았다. 장모님이 다른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며 숨기시다가 한국인 선원들만 재납치가 되자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40년 가까이 배를 탄 분이라 평상시 자주 뵙지 못했지만 휴가 기간에는 늘 함께 했다. 장인이 해적에게 납치가 됐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듣고 너무 놀랐다. 그제서야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올해 들어 외교통상부와 국토해양부 관계자를 3번 만났다. 그런데 최근 일간지를 보니 외교부가 출입 기자들에게 ‘가족들을 만나 상황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더라. 사실이 아니다. 3번 중 2번은 가족이 요청해서 만났고, 만났을 때 구체적인 내용은 듣지 못했다. 들고 나온 관련 자료나 문서도 없었다. 이번 추석 전에도 만남을 요청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추석 이후 만나자고 하더라. 평소에 가족들이 전화해도 외교부에선 ‘회의중이다’ ‘자리에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네 분이 잘 계신지 알 길이 없다.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 선박회사가 해적과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올해 초에는 UN 반기문 총장을 통해 이 사안을 소말리아 현지에서 어필 할 수 있도록 부탁하겠다고도 했다. 소말리아 현지인들과 교신 창구를 만들어 한국 정부가 계속 상황 판단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이후에 그러한 외교부의 노력이 실효성이 없었다라고 이야기 해주더라. 그래서 맥이 빠진 가족들이 앞으로의 대안을 묻자 외교부는 아무 말도 못했다.

잘 모르겠다. 올해 두 번 만났고, 한국 정부와의 만남에 함께 나왔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류나 문서를 보여준 것은 없다. 해적과의 협상 진행 상황을 말로 설명해주더라. 해적들이 터무니없이 큰 금액을 요구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해적들은 금전적 요구를 하면서 동시에 부산에 수감중인 해적 5명과 한국인 선원의 맞교환도 함께 요구했다. 그런데 올해 초 선원-해적 맞교환 요구는 철회하고 금전적 요구만 하기 시작했다. 이때 협상이 진전을 보이는 듯 했는데 잘 안됐다. 지난달 만남에서도 싱가포르 선박회사는 해적들이 ‘정치적 요구’를 없앨 때까지 전략적으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선박회사는 해적들이 제시하는 협상금이 터무니 없이 높은 이유가 아덴만의 여명 작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질 석방에 드는 일반적인 협상금이 아니라, 당시 죽은 해적의 몸값과 선원-해적 맞교환 포기 대가가 많이 반영된 요구라고 보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사는 왜 자신들이 한국의 외교적·정치적 사안의 해결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써야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나가는 것은 협상에 방해가 된다고 외교통상부와 선박회사와 인력송출회사가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그걸 믿었다. 그렇게 지나온 게 500일이 넘은 거다. 이제는 다른 것은 모르겠고 거기 계신 네 분의 생존이 걱정이다(울음). 9월에 정부측과 만났을 때 국토해양부 담당자가 ‘혹시라도 가족들이 정부에 기대를 할까봐 이야기 하는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부는 정보가 없어서 군사작전을 할 수도 없고, 예산이 없어서 협상금을 보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박 선장님은 여동생분과 7월에 대화를 하셨고, 이00 선생님은 5월에 부인과, 김00 선생님은 집으로 부재중 전화가 몇 번 왔고 사모님이 목소리를 들으신 건 매우 오래 전이다. 이00 선생님은 7월20일에 음성메시지를 남기신 것이 전부이다. 해적들에게는 9월에도 연락이 왔으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다시 걸라고 하고 끊곤 한다.

가족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최근 한 언론을 통해서다. 그런데 나는 지난해 11월말 싱가포르 선사측이 협상금을 헬기에서 제미니호로 투하하기 직전에 배 위에 선원 25명이 전부 있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들었다. 당시 촬영된 항공사진을 본 가족들도 있다. 싱가포르 선박회사가 가족들에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지난 11월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배 위에 있었다는 얘기 아닐까.  

이번 사건은 일반 해적 납치사건과 다르다. 장인을 비롯해 모두 한국 사람이라서 재납치가 됐다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밖에 나가서 나쁜 짓을 하다가 억류되지 않았다. 그런데 구출을 위해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가족들은 분노하고 있다. 언론도 제미니호 사태의 장기화를 적극적으로 다뤄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