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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담은 새로 나온 판 두 장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 판에 등장하는 작곡가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분은...


 루이 마르샹 Louis Marchand (1669-1732)

                           
루이 마르샹은 프랑스에서 당대 최고의 오르간 및 건반악기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웬만한 바로크 시대 음악가들처럼 오늘날엔 거의 잊혀졌던 인물입니다. 이분의 음악세계를 논할 능력은 안 되니,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재미 있는 에피소드 둘만 소개하지요.

- 당대 최고의 연주자이니 당연히 파리에서 루이 14세 직속 연주자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빼어난 연주 능력과는 별개로 인성은 그닥이었나 본지 숱하게 바람을 피기도 하면서 아내에게 손찌검을 예사로 했다네요. 정통 빠리지엔이었던 (유명 음악가 집안 출신이기도 했던) 그의 부인은 급기야 소송을 했고 태양왕께서는 그에게 갈 봉급을 반으로 쪼개어 부인에게 보내도록 판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 왕이 배석한 자신이 오르간을 맡아 연주하는 미사 중간에 연주를 하다 말고

'폐하, 나머지 절반은 제 처에게 연주하라고 하십시오.'

라고 했다는 이야기.
 

- 아마도 이것이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이지 싶네요.
위에서 얘기한 부인과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란 말도 있고 그의 무도함에 빡친 태양왕이 그를 추방해 버렸기 때문이란 설도 있는데, 어쨌든 마르샹은 1713년부터 독일 전역을 돌며 연주회를 가지게 되었고, 빼어난 그의 기량 때문에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1717년 어느 날, 이런 소문이 돌게 됩니다.

'9월에 프랑스의 대가 루이 마르샹과 작센 출신의 젊은 연주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네, 바로 그 '음악의 아버지' 大 바흐입니다) 드레스덴에서 경연을 한다.'

나름 슈퍼매치인데, 이루어졌더라면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을 이 이벤트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르샹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갑자기 드레스덴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지요. 독일에서 나온 몇몇 기록이 '마르샹이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도주를 해버렸다'고 적었고 바흐의 전기작가가 이를 전기에 싣는 바람에 이 에피소드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마르샹은 역사 속에 '치킨'으로 남게 되어버렸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이 실제 일어난 사실인지는 그닥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 바흐는 호시탐탐 바이마르를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을 때였고, 그 때문에 급기야 감옥살이까지 할 때였으니...)

우습게도 이 일화는 독일 쪽에서 나온 출처만 몇 군데 있을 뿐 프랑스쪽 문헌에선 전무하다고 하니, 이러한 근거가 이 일화가 사실이라는 방증인지 그 반대인지는 후세 사람들이 판단할 일...
어쨌든 마르샹은 드레스덴을 떠난 뒤 파리로 돌아와 정착하여 여생을 연주 및 교육에 힘쓰며 보냈다고 하네요.


당대에나 유명했을 뿐, 훗날 철저하게 잊혀져버린 탓에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당시 명성에 비하면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주력은 건반악기 작품들.

CD 1장을 다 채우지 못할 수준의 적은 양이지만 '좋은 시절'을 보냈던 대가의 한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샹의 작품을 들으면서 그와 한 살 차이였던 파리의 대가 大쿠프랭의 작품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샹만으로 CD 한 장을 채우긴 버겁기 때문에(뭐,꿋꿋하게 40분도 안 되는 1장짜리로 발매한 판도 있긴 합니다만)
 
나머지 공간을 다른 이의 작품으로 메워주어야 했습니다.

 장-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


눼, 프랑스 바로크의 최후를 화려하게 장식한 장-필립 라모입니다.

라모 이야기는 아래로 미루기로 하고, 여기 수록된 건 그가 세 번에 걸쳐 출판한 건반악기 독주곡집 중 첫번째 것이라는 정도만 언급해야겠네요.

분량도 그 정도면 적당하거니와, 시기적으로도 마르샹의 작품이 나왔을 때와 비슷하기에 이는 여러 모로 적절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샹의 작품은 대략 1702-1707쯤, 라모의 첫번째 작품집은 1706년에 나왔습니다. 라모보다 15세 위이며 마르샹과 거의 같은 연배인 大쿠프랭의 첫 작품집이 1710년에 나온 걸 생각해보면 라모가 얼마나 패기만만한 청년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 판을 연주해준 이는,
 
 크리스토프 루쎄Christophe Rousset (1961--)


현역 고음악 건반악기 연주자로서는 단연 첫손꼽혀 마땅한 이인 크리스토프 루쎄입니다.

그의 테크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뛰어난지는 제가 알 리가 없으나 일단 듣기에 딱 느껴지는 그의 자세는 언제나 '자신만만함'이라고나 할까요. 암튼 그런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그래서인가, 그가 90년대에 녹음한 大쿠프랭 작품집(HMF)은 들을 때마다 '이래야 하나..' 하며 쪼금 갸우뚱~한 느낌을 주는 반면 라모의 건반악기 작품집(L'oiseau lyre) 녹음은 그야말로 뱃속 깊이 '유쾌, 상쾌, 통쾌', 단숨에 90년대를 대표하는 라모 녹음이 되었음은 물론, 역대 최고의 라모 녹음 후보로 당당히 떠오르게 됩니다.

그랬던 그가 두번째로 라모의 건반악기 작품집을 녹음하게 된 셈이지요. Ambronay (아마도 HMF 산하인 듯)에서 나온 이 판에서 루쎄는 이전 녹음에 사용한 악기보다 더 오래된 악기를 사용해 변화를 꾀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 녹음에 사용된 악기가 더 듣기에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루쎄가 이 악기를 써서 나머지 라모의 작품을 한번 더 녹음할지 어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마르샹을 주력으로 한 판에 끼워넣기한 것이라고 봐야지 않을까 싶은데요. 두고볼 일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여 '평균율'이나 녹음해 주시지요."라 하고 싶지만ㅋ)


프랑스 바로크의 절정기의 전후를 함께 했던 두 대가의 작품을 녹음한 신반 소개 차 한 곡씩 올려봅니다.

같은 곡에 대한 다른 녹음도 하나씩 추가했으니 악기 간에 확연한 음색차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작권의심위반'크리로 루쎄의 구녹음을 못올리게 되어 아쉽네요)

Louis Marchand

샤콘느 Chaconne

Jean-Philippe Rameau

첫번째 클라브생 모음곡 Premier livre de pièces de clavecin 中 전주곡 Prélude






두번째로 소개할 판의 음악가 역시 다시 한 번 라모Jean-Phillipe Rameau 입니다.




판 제목이 좀 특이하네요. '두 대의 클라브생을 위한 합주곡'.

이걸 특이하다 하는 이유는 라모 자신이 직접 두 대의 클라브생을 위해 따로 쓴 곡이, 제가 알기론 없다는 것 때문인데요,

실은 라모가 남겨 놓은 독주 건반악기용 작품, 실내악곡, 오페라 등에서 이것저것 가져다 편곡한 판들을 수록한 거랍니다.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사라진 음악가인 라모의 작품 세계의 양대 하일라이트는

1. 건반악기(클라브생) 작품
2. 오페라 (오페라-발레 및 서정 비극)

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들 작품은 시기적으로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이론가, 교육자로 활동하던 장년 이전까지는 주로 건반 독주곡을 비롯한 실내악 작곡에 치중하다가 50을 바라보는 장년기부터 갑자기 오페라 작곡가로 변신, 여생을 파리의 궁정 및 극장에서 명성을 휘날렸더랬습니다.


라모는 평생 세 번에 걸쳐 클라브생 독주곡집을 출판했습니다. 1706년에 '첫번째 작품집', 1724년에 '두번째 작품집', 1728(9?)년에 '새 작품집'이라는 이름으로요. 앞서 소개한 마르샹 음반에서도 언급했지만 첫번째 작품집은 고작 23세 때, 당시 38세의 大쿠프랭보다도 4년 먼저 나온 것으로 새파란 청년 라모의 치기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수록된 작품의 완성도나 인기는 훗날 나온 '두번째', '새' 작품집이 훨씬 높습니다만.


그러다가 50세를 맞이한 1733년, 라모는 갑자기 오페라의 세계에 뛰어듭니다. 라모가 활동하기 50여년 전 이탈리아에서 막 흥하기 시작한 오페라라는 장르를 (원래는 조반니 바티스타 룰리였던) 장 밥튀스트 륄리가 수입해와 프랑스 궁정에 걸맞는 화려한 '서정 비극'과 '오페라-발레'라는 두 가지 형태로 변모시켰고,

라모는 이를 받아 서정 비극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e', 오페라-발레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Les Indes galantes'을 시작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30여 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터뜨리며 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예술적으로는 바로크(로코코) 시대를, 정치적으로는 앙시앵 레짐의 말년을 말이지요.


재미있는 건 젊어서 써둔 독주곡에서 많은 선율을 따다가 후에 오페라에서 써먹었던 게 많이 발견되었다는 건데,

이 음반에 수록된 작품들이 실은 그런 거 위주로 짜여져 있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다 그렇지도 않아서 다음과 같이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1. 원래 클라브생 독주곡으로 태어남 -> 작곡자에 의해 편곡, 오페라에 삽입됨 -> 두 대의 클라브생 합주곡으로 편곡
2. 원래 실내악 합주곡으로 태어남 -> 두 대의 클라브생 합주곡으로 편곡
3. 원래 오페라로 태어남 -> 작곡자에 의해 클라브생 독주곡으로 편곡됨 -> 두 대의 클라브생 합주곡으로 편곡
4. 원래 오페라로 태어남 -> 두 대의 클라브생 합주곡으로 편곡


그 중에서 다섯 곡 정도를 뽑아서 올려볼까 합니다.


연주를 맡아주신 분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밑에서 동문수학(?)한 두 젊(지만은 않)은 대가 스킵 젬페Skip Sempé(54세)와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ï(48세)네요.

아쉽지만 이런 구성의 판이 전무하므로 딱히 비교 대상이 없네요. 어쩔 수 없이 다른 버전의 연주를 비교차 같이 올려봅니다.



첫 곡은 3번 경우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그의 첫 오페라-발레 ('오페라에 발레가 잔뜩 들어간 것'이라 단순하게 정의내리긴 뭐합니다만 좀 틀렸다 한들 뭐 어떻겠어요^^;)인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의 서곡을 훗날 라모가 독주곡으로도 정리해둔 것을 연주자들이 다시 두 대의 클라브생 합주곡용으로 편곡한 겁니다.

오페라의 내용은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곡자의 어이 없는 지리 개념이 잔뜩 들어간 작품으로 '터키', '페루' 등의 나라가 '인도'에 속한다고 소개되지요, 켁>,.<

하지만 워낙 즐거우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찬 작품이라 안 들어볼 수는 없는 노릇.

판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 서곡부터 들어갑니다.

Jean-Philippe Rameau

오페라-발레 '우아한 인도의 나라들 Les Indes galantes' 서곡



오페라-발레                         두 대용 편곡                                        독주용 편곡        

두번째 곡은 1번 경우로 1728년쯤 나온 '새 작품집'에 수록된 '야만족 Les Sauvages'로 '우아한 인도...'의 마지막 막 (제목이 '야만족의 나라'입니다-_-;)에 '야만족의 춤'이란 제목으로 들어갑니다.

워낙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보니 클라브생 독주곡은 물론, 따로 관현악만을 위한 버전으로 다양하게 편곡되기도 했기에 이 곡은 총 여섯 가지 버전으로 올려보았습니다. 가사를 번역해 보면 손발이 오그라듬을 스스로 느끼실 수도ㅋ.

야만족의 춤 Les Sauvages



클라브생 독주                       두 대용 편곡                                  피아노 독주





오페라-발레                              관현악 모음곡                      관현악 모음곡         

Forêts paisibles,
Jamais un vain désir ne trouble ici nos coeurs.
S'ils sont sensibles,
Fortune, ce nèst pas au prix de tes faveurs.

Dans nos retraites,
Grandeur, ne viens jamais
Offrir tes faux attraits!
Ciel, tu les as faites
Pour l'innocence et pour la paix.
Jouissons dans nos asiles,
Jouissons des biens tranquilles!
Ah! peut-on être heureux,
Quand on forme d'autres voeux?



이번엔 경우 4. 원래 서정 비극 '다르다뉘스'에 들어 있던 곡을 연주자들이 편곡한 걸로 믿어지는 케이스. 흥겨운 춤곡인 '탕부랭(영어로 읽으면 '탬버린'이죠)입니다.

탕부랭 Tambourin



서정비극 '다르다뉘스'                    두 대용 편곡    

이번엔 경우 2.

한참 오페라 활동에 매진하던 시절인 1741년 실내악 합주곡인 '합주곡으로 꾸며진 클라브생 작품집 Pièces de clavecin en concerts'를 발표합니다..

생기발랄한 소품으로 가득한 작품집인데 거기서 한 곡을 뽑아 편곡했네요. 뽀나쓰로 루쎄가 편곡한 관현악 버전까지.

합주곡으로 꾸며진 클라브생 작품집 Pièces de clavecin en concerts 中 '무언극 La Pantomime'



    실내악 합주                                          두 대용 편곡                            관현악 편곡

마지막으로 다시 1번 경우.
1724년의 '두번째 작품집'에 수록된 '탕부랭' - 우리에겐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우박은 춤춘다'로 더 잘 알려진 곡이지요-과 이를 그의 오페라-발레 '에베의 축제Les fêtes d'Hébé'(1739)에 편곡한 것.(원래 올리려 했던 오페라 전곡반에서의 발췌는 현재 '저작권위반의심' 크리로 재생이 안 되어 관현악 모음집으로 바꿉니다.)

탕부랭 Tambourin



독주곡                     오페라-발레 '에베의 축제 Les Fêtes d'Hébé'           두 대용 편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