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PARK

(링크된 음악을 다 들으려면 80분 정도 짬을 내셔야-_-;;;)



'신보'라 하기엔 좀 됐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판이라 다소 뒤늦게나마 올려봅니다...ㅎㅎ

일본의 대가 스즈키 마사아키鈴木雅明 옹의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 중 52번째 교회칸타타 신보입니다.

동양인 지휘자가 동양 악단을 이끌고 이런 방대한 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여기저기서 표시했지만 '바흐가 믿는 주님과 내가 믿는 주님은 같은 분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꿋꿋하게 버텨왔지요. 90년대 말 첫 삽을 뜨기 시작한 후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이제 고지가 저기 눈앞입니다.

현재까지 교회칸타타 52장, 세속칸타타 2장을 녹음한 시점에서,

세속칸타타는 아직 갈길이 좀 남아 있지만 교회칸타타는 얼추 CD 세 장 분량의 9곡(BWV 9,14,30,97,100,177,191,193,197)만 남겨 놓고 있군요.

어여 빨리 완성하길 기원합니다.

이것이 마무리되면 그는 Hänssler의 헬무트 릴링, Erato/Challenge의 자신의 스승 톤 코프만에 이어 BIS를 통하여 세번째로 바흐 칸타타 전곡을 단독으로 완성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비단 칸타타 뿐 아니라 Missa brevis만 추가하면 주요 성악곡 전부를 아우르겠네요.

(Teldec의 아르농쿠르/레온하르트는 단독 녹음이 아니고, Brilliant의 로이싱크나 SDG(+DG)의 가디너는 진정한 전곡이 아니므로 셈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작정 전곡을 녹음했다는 사실보다는 거기 담긴 음악 및 연주의 질이 더 중요하겠습니다만, 스즈키의 연주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관현악 연주는 기본적으로 스승 코프만과 대동소이한 규모, 요즘 경향보다는 살짝 큰 규모를 택하면서도 (두 사람 모두 요즘의 '대세'(?)인 조슈아 리프킨의 1성부 당 1명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정교한 앙상블을 보여주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 일본인을 기용하여 살짝 걱정스러웠던 합창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스승 코프만은 많은 부분에서 '목소리 꺾기'가 등장하는데 스즈키는 그 부분을 대부분 비브라토 없이 넘어감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하네요. 전 '꺾기'가 없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ㅎㅎ

다만 시리즈 초반, 그가 기용한 성악진의 소리가 전반적으로 조금 얄팍한 감이 있어서 '초밥 같다'는 긍정/부정이 뒤섞인 평가가 있었는데, 그 점은 시리즈 초중반부터 뛰어들어 지금까지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베이스 페터 코이에게 어느 정도 공을 돌려야겠습니다.


오늘은 이미 대업을 마무리한 스승과 마무리를 눈앞에 둔 제자 관계인 두 사람, 코프만과 스즈키의 두 연주를 같이 들어보도록 합니다. 왼쪽이 스즈키의 신보, 오른쪽이 코프만의 10년쯤 된 녹음. 누가 사제 관계 아니랄까봐 두 사람 모두 연대별 작곡 순서를 (대충) 따라 녹음했다는 것까지 같군요.ㅎㅎㅎ



52집의 오프닝은 저 유명한 칸타타 BWV 140입니다. 이 곡에 얽힌 이야기는 지난 번 카위컨 일당의 15집을 소개할 때 했으므로 넘어갑니다. 혹시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난다 한들 어쩔 도리가...ㅎ

Johann Sebastian Bach

칸타타 BWV 140

1. (합창)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 Wachet auf, ruft der Stimme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Der Wachter sehr hoch auf der Zinne,
Wach auf, du Stadt Jerusalem!
Mitternacht heißt diese Stunde;
Sie rufen uns mit hellem Munde:
Wo seid ihr klugen Jungfrauen?
Wohl auf, der Brautgam kommt;
Steht auf, die Lampen nehmt! Alleluja!
Macht euch bereit
Zu der Hochzeit,
Ihr musset ihm entgegen gehn!


깨어나라, 일어나라 부르는
저 탑의 파수꾼의 소리가 들리도다.
깨어나라, 너 예루살렘이여!
한밤의 시간이 우리를 불러내도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퍼지도다.
너희 순결한 처녀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서둘러라, 신랑이 오시니,
일어나 등불을 밝힐지어다! 알렐루야!
결혼 축제를 준비할지어다.
그가 올 때 나아가 그를 맞이하라!




유명한 테너의 코랄을 스즈키는 테너 독창에게, 스승 코프만은 테너 합창에게 맡겼네요. 여기에 코프만 본인이 직접 연주한 쉬블러 코랄집의 이 대목을 끼워넣어 봅니다.

4. (테너) 시온은 파숫꾼의 노래를 듣고 Zion hort die Wachter Stimmen
+
쉬블러 코랄집 Schubler Chorale (오르간) 눈 뜨라 부르는 소리 있도다 Wachet auf, ruft der Stimme BWV 645


Gerd Türk Ton Koopman (오르간)

Zion hort die Wachter singen,
Das Herz tut ihr vor Freuden springen,
Sie wachet und steht eilend auf.
Ihr Freund kommt vom Himmel prachtig,
Von Gnaden stark, von Wahrheit machtig,
Ihr Licht wird hell, ihr Stern geht auf.
Nun komm, du werte Kron,
Herr Jesu, Gottes Sohn!
Hosanna!
Wir folgen all
Zum Freudensaal
Und halten mit das Abendmahl.


시온은 파숫꾼의 노래를 듣고,
기쁨으로 가득한 그녀의 마음은 춤추네.
그녀는 깨어나 급히 일어나고
그녀의 친구가 영광의 하늘에서 내려오네,
가장 자비로우며 가장 진실된 곳에서.
그녀의 등불은 밝게 타오르고, 그녀의 별빛은 높이 솟아오르네.
이제 오소서, 고귀한 왕이시여,
주 예수, 주님의 아들이시여!
호산나! 기도하라!
만찬이 차려진 기쁨과 즐거움 가득한 전당으로
우리 따르리라.



시리즈 막판에 오면서 일본인 독창자들의 기용이 부쩍 줄었습니다. 왜일까요. 어쨌든 43집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체흐 출신의 소프라노 하나 블라지코바가 여기서도 수고해주고 있습니다. 베이스는 언제나처럼 페터 코이가 무게중심을. 그러고보니 (2) 코프만의 녹음에서도 소프라노는 여럿 등장하지만 베이스는 클라우스 메어텐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버텨주었다는 것도 나름 공통점.

6. (소프라노+베이스) 내 친구는 나의 것 Mein Freund ist mein


Hana Blažíková Peter Kooy Sandrine Piau Klaus Mertens

Mein Freund ist mein, / Und ich bin dein,
Die Liebe soll nichts scheiden.
{Ich will, du sollst} mit {dir,mir} in Himmels Rosen weiden,
Da Freude die Fulle, da Wonne wird sein


내 친구는 나의 것 / 나는 너의 것.
이 사랑이 깨지지 않게 하소서/하라.
천국의 장미가 만발한 뜰에서 당신과(/너와) 함께 하리니.
기쁨이 가득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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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곡 BWV 112 또한 BWV 140과 같은 해인 1731년에 태어난 작품으로 140번과 마찬가지로 라이프치히 시즌 2(1724-1725)에 중단된 코랄칸타타 사이클을 마무리짓고자 하는 의도로 썼을 겁니다.

부활절 후 2주일을 위한 작품으로 맹인을 고쳐준 예수의 이적이 이 날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가사 첫 머리 '주님은 나의 참된 목자'가 거의 모든 걸 알려주고 있네요.

1724-5년 사이클과 가사를 통일성 있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겠기에 당대 유명한 루터파 코랄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다 씁니다. (참고삼아, 이렇게 코랄 가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바흐의 코랄칸타타는 대략 10여 곡 정도)

'목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에 곡 전체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호른과 오보에가 많이 활약한다는 사실 정도 알아두면 나쁠 것 없겠습니다.

칸타타 BWV 112

1. (합창) 주는 나의 참된 목자 Der Herr ist mein getreuer Hirt

Der Herr ist mein getreuer Hirt,
Hält mich in seiner Hute,
Darin mir gar nichts mangeln wird
Irgend an einem Gute,
Er weidet mich ohn Unterlass,
Darauf wächst das wohlschmeckend Gras
Seines heilsamen Wor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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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집의 클라이막스는 BWV 29가 맡았습니다. 현재 자동재생으로 걸어놓은 작품이지요.


이 작품은 바흐의 다른 칸타타들처럼 교회력의 특정 축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바흐가 근무하던 라이프치히 시 의회 출범식을 축하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작센 주 선거후 아래에 있는 의회가 오늘날 민주주의 의회와 과연 뭐가 비슷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년에 한 차례씩 의원들의 면면이 물갈이되는 제도가 있었고 이들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인 8월 24일 기준으로 그 다음 월요일에 출범 행사를 당연히 예배의 형태로 가졌다 합니다.

시에서 가장 큰 정치적 행사인 만큼 시의 음악 총책임자인 바흐에게 그 축전음악을 맡기는 건 당연한 관례, 1723년 라이프치히 부임 이후 바흐는 이 때마다 매번 축전칸타타를 써서 바쳤기에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작품을 제외해도 꽤나 많은 수의 작품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흐는 이런 축전음악과 인연이 제법 있는 것이, 음악적 명성이 '듣보'에 가까웠던 뮐하우젠 시절인 1708년에도 의회 출범식을 위한 칸타타 BWV 71을 쓴 일이 있군요. 심지어는 이게 출판되기까지 하여 그와 비슷한 연배인, 그러나 그 명성은 생전의 바흐와 비교 불가할 정도로 높았던 헨델이나 텔레만보다도 출판 시장 데뷔는 더 빨랐다능-_-;)


오늘의 BWV 29는 그 중에서도 꽤나 후기인 1731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본질적으로 실내악 합주에 가까운 그의 다른 칸타타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음량을 요구하는 관현악 구성입니다. 타악기에, 트럼펫, 오보에까지 요구하는 구성이지요. 웬만한 칸타타에 등장하는 관악기가 하나를 넘는 경우가 드문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큰 겁니다.ㅎㅎㅎ

거기에 찬란한 음색의 오르간이 독주악기로 맹활약하여 첫 악장, 신포니아는 매우 근사한 협주곡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일단 첫 곡 신포니아부터 들어보시고.

칸타타 BWV 29

1. 신포니아 Sinfonia

근데 이 곡,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으세요???


눼, 고전 음악에, 바흐의 작품에 약간 정도만 관심이 있으면 그 존재를 모를 수 없는 작품,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의 선율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뭐 서양음악사의 모든 '무반주'를 대표할 정도의 곡이니.


교회력의 절기에 따라 그야말로 일상적으로 연주하는 칸타타는 몰라도, 이렇게 특별 이벤트가 있는 날 연주하는 곡을 재탕 삼탕하기는 좀 그랬겠지요? 이날, 대략 8월 마지막 월요일에 연주되는 칸타타는 철저히 '1회용'이었기에 바흐는 이날을 위한 작품을 쓰기 위하여 예전 작품을 패러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거꾸로 여기 써먹은 작품을 훗날 다른 곳에 다시 패러디하는 데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여기 BWV 29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첫 악장인 찬란한 신포니아를 위해 바흐는 쾨텐 시절(1717-1723)에 써두었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6곡의 소나타+파르티타 세트에서 한 곡을 가져옵니다. 파르티타 3번 첫 악장인 전주곡을요. 당대/후대인들에게서 '햇살 비치는 즐거움'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밝은 곡이지요.


바흐 자신도 이 곡에 대해 애착이 많아서였을까요. 그는 첫 곡 전주곡을 오늘 소개하는 칸타타 BWV 29에 오르간 협주곡의 모습을 한 떠들썩한 규모의 신포니아로 탈바꿈하기도 했고, 몇 년 후에는 BWV 1006 전체를 류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다섯 가지 악기의 연주를 올려볼까 합니다.

1. 바이올린 - 당시 악기가 아니라 현대의 바이올린을 쓰긴 했지만 당대의 연주 스타일을 충분히 고려한 연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 비올라 - 바흐가 비올라로 연주해도 좋다는 지시를 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이런 명곡을 비올라 연주자라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이해합니다.
3. 류트-하프시코드 - 류트면 류트고 하프시코드면 하프시코드지 뭔 소리인가 싶지만, 두 악기가 음을 만드는 메커니즘이 근본적으로 비슷하다고 보면 뭐 또 될 것도 없겠지요. 그냥 '류트와 아주 비슷한 음색을 가진 건반악기' 정도로 거칠게 이해하고 넘어가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4. 류트 - 바흐께서 지정하신 악기 그대로.
5. 기타 - 류트의 후손이 오늘날 기타라 봐도 좋을 테니 현대의 기타리스트가 또 이를 외면할 수 없지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3번 E장조 BWV 1006 - 1. 전주곡 Preludio



Viktoria Mullova (바이올린) Scott Slapin (비올라)




Elisabeth Farr (류트-하프시코드) Konrad Junghänel (류트) 山下和仁 (기타)

떠들썩한 신포니아가 울려퍼진 후, 장대한 합창이 등장합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대단히 낯익은 선율이지요???

2. (합창) 주여, 감사드립니다 Wir danken dir, Gott


(지휘) 鈴木雅明 Ton Koopman

Wir danken dir, Gott, wir danken dir und verkündigen deine Wunder.



이 합창의 선율을 들으면 대부분은 칸타타 BWV 29보다는 바흐 만년의 대작 b단조 미사 BWV 232를 떠올릴 것입니다.

나름 바흐 성악곡의 '엑기스'라는 것이 b단조 미사의 의의라 할 수 있는데, 저명한 바흐 연구자인 조슈아 리프킨의 견해에 따르면 전체 25곡 중 단 한 곡만이 새로 작곡되었으며 나머지 24곡은 모두 예전에 써두었던 칸타타 악장을 재활용한 것이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태수난곡 같은 걸작에 비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긴 하나, 반대로 생각하면 짜깁기 작품이 이렇게 대단하다는 것이 다시한번 바흐가 얼마나 엄청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BWV 29의 이 합창곡은 b단조 미사에 두 번 등장합니다. 한 번은 '영광송'의 한 대목. 나머지 한 번은 '주의 어린 양'의 마지막 부분.

미사 b단조 BWV 232

7. 크신 영광에 감사를 Gratias agimus tibi 25.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Dona nobis pacem

Gratias agimus tibi propter magnam gloriam tuam,
주의 크신 영광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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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 nobis pacem.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앞부분에 워낙 대작들이 등장하다 보니 춤곡 풍의 즐거운 아리아는 이래저래 소소하게 들리네요.

코프만과 스즈키, 두 사제의 연주는 여러 모로 비슷한 스타일인데 묘하게도 스승인 코프만은 알토 파트에 꾸준히 여성 가수를(초반 녹음엔 카운터테너도 조금 있었지만) 기용했고, 제자인 스즈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가수를 썼다는 게 새삼 느껴집니다.

어쨌든 우공이산을 이루는 데 몇 걸음 안 남은 동양의 대가에게 응원을 보내며 마무리.

7. (알토) 할렐루야, 힘과 권능을 Halleluja, Stärk und Macht



Robin Blaze Bogna Bartosz

Halleluja, Stärk und Macht
Sei des Allerhöchsten Namen!

할렐루야, 힘과 권능을
전능하신 주의 이름에 바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