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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스코리아인 그녀는 고려대학교에 특례 입학해, 방송국 아나운서, 재벌가 며느리까지 한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이 이룬 사람이다. 그녀는 "나눔의 행복"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회봉사를 많이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봉사정신이 투철했던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화려했던 인생의 밑바탕에는 수많은 학생과 교사의 눈물과 고통이 깔려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현재 한국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부성고를 설립한 한석봉이다. 그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1973년에 한얼여자상업전수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지냈고, 다시 1978년 현 부성고가 속한 세화학원을 설립하고 원장을 지냈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바로 앉은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은 부산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나이에 학교를 설립한 그는 정치에 뜻을 품어 야당이었던 신한민주당적으로 1985년 1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민자당 정책 평가위원 등으로 정계를 누볐고, 경북 매일신문 주필과 사장을 지내며 언론계에도 몸담았다.

성공한 사람의 표상 같았던 그가 크게 뉴스에 나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93년이었다. 그 해 그는 교육청 감사에서 공금을 횡령하고, 학생 저축 횡령, 자신의 국회의원 선거 운동이나 집안 일 등에 교사를 동원하는 등 학교 재단을 파행적으로 운영한 것이 적발돼 구속돼 여러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재단 공금을 횡령한 것이야 당시 사학들이 많이 하던 짓이고, 교사를 사적으로 동원한 것도 다른 사학과 비슷한 흔하다면 흔한 일이다. 그런데 조금 흥미로운 것은 학생 저축을 횡령했다는 점이다. 1993년 2월 11일자 연합뉴스가 보도한 "눈물바다된 문현여상 졸업식장" 기사를 보면 학교 측의 저축 횡령에 대해 절박한 호소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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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학부모 여러분 청소년들이 이 사회를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역겨운 고무와 본드냄새를 마다하지 않는 신발회사에서, 비린내나는 수산회사 작업 현장에서 대가로 받은 월급입니다" " 손발이 얼어붙는 작업환경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그리며 저축한 돈입니다 제발 돌려주세요."

특히 졸업생 1천2백명중 신발, 수산회사등 산업체 근로자였던 야간부학생 2백50명은 온갖 고난끝에 거머진 졸업장보다는 상급학교 진학을 꿈꾸며 모아왔던 1인당 최저 1만원에서 최고 3백70만원의 돈을 받지 못해 수년간 꾸어왔던 꿈이 깨져 버린데에 대한 울분의 눈물을 저마다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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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여상 야간에는 공장에 다니며 어렵게 학업을 같이 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학교 측은 이들에게 "월급을 저축하면 학교에서 목돈 만들어 줄테니 학교 금고에 저축하자"라고 말하고 거진 반강제적으로 저축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학생 1200여명이 3년간 학교 금고에 넣어온 돈 2억 8000만 원을 한석봉이 무단으로 대출 받거나, 유용해 사건이 터진 시점에 4000만 원만이 남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교사들로부터 채용 대가로 1억7천6백만원의 기부금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교육청은 친인척인 경리주임과 서무과장, 교장 등은 학교 재정 중 5억 8400만 원을 유용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런 총체적 비리 사건이 드러나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 뒤 구속 수감된 한석봉은 1999년 다시 세화학원에 화려하게 돌아온다. 그 동안 세화학원은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됐는데, 시 교육청이 관선이사를 철수하고 한석봉의 누나를 다시 이사장에 앉힌 것이다. 비리 재단의 복귀를 반대해 온 교사들을 직위 해제한 것은 덤이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재단에 복귀한 한석봉 일가는 2006년 다시 한석봉을 교장으로 복귀시키려 했고, 재단은 파행을 거듭하다 2007년 교사 1명을 파면하고, 6명을 해임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다시 돌아온 한석봉은 부성고를 한국에서 유일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 학교로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