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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왜 영화를 애정하는 것일까.

이렇게 고민을 한끝에 얻은 결론은. 세상은 내가 더이상 외롭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참 비디오로 빌려 보던 시기. 캄보디아의 학살을 다룬 '킬링필드' 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는것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에 뚜렷히 남아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주인공인 서방기자가 크메르 군인들에게 잡혀 고문을 당한 다음날의 장면이다. 낯선 장소에서 새벽 무렵 잠에서 깨어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오는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왠지 모르게 그 장면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그 현실을 곧대로 받아들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이상을 그려내는 듯한 풍경이었다. 물론 그것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서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의 정경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내가 느끼는 동질감은 또 다른 내 자신과의 조우인지 나와 닮은 감독과의 만남인지. 또는 나와 공감 할 수 있는 어떤 인물과의 만남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 순간순간 유일하게도 영화만이 나에게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이다. 더이상 고독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은 따스한 안도감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위로로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혼자서 외로히 있다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치유로서의 의미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하여 영화가 치유로서의 순기능을 하지 못할때 나는 영화에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만다. 그것은 단순히 이성적인것만도 아니고 감정적인것만도 아닐테지. 모든것이 일체가 되었을때. 나의 머리로 수긍을 하고 나의 가슴으로 반응을 하는 그 순간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때문에 말초적으로 소비되는 영화들. 또는 이론과 철학에 매몰되어 관객이 아닌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어 버리는 경우. 또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는 영화들에서는 약간의 거리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 작품들에서조차 희망과 따스함을 찾아내려하는 건 바람직한일일까. 

나의 베스트 중 하나인 우디알렌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는 이런 점에서 너무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그곳에는 현실에 연착륙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이 놓여저 있다. 그가 낯선 황야에서 헤메이다가 외계인을 만날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마치 혜가가 깨닳음을 얻기 위해서 달마 앞에서 그토록 애닳음의 심정으로 있다가. 그러한 마음을 지적하자마자 깨닳음을 얻어버렸다는 그 장면과도 같았다. 그것은 영화속 주인공의 성숙이기도 하고 우디알렌의 성숙이기도 하고 내가 성숙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지. 사실 삶을 살다보면 마음속에 그려놓은 구조에 속박되어 지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것을 지우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이 흔들려왔던가.

나의 또하나의 베스트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절망과 허무속에서 몸부림칠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이렇게 위대하게 보여준 작품이 있었나. 

왜 우리는 선듯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사랑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할까. 나는 그래서 아무렇게 쓰이는 쿨하다. 라는 표현을 안타까워한다. 쿨하다 라는 단어속에 감추어둔 내밀하고 떨리는 마음의 위장이. 그토록 가식적으로 보여서이다. 사랑에 상처받기가 무서워. 닿을 용기가 없어. 숨어버린 가면에 지나지 않다. 그런 수많은 현대인. 또한 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둔중하게 들려주는 그의 영화언어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무장해제가 되는 느낌이다. 

또한 나에게 영화로서 가르침을 준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신의침묵 3부작인 '거울을통해어렴풋이', '겨울빛', '침묵' 은 어떤가

인간이 반드시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단 하나의 질문. 구원의 문제. 신의 침묵의 문제에 대해서 왜 그동안 그 수많던 연출자들은 외면을 해왔던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히 풀지못할 숙제에 대해서 그는 끊임없이 작업을 해나간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유년 시절 친구와 함께 나란히 방과후 놀이터 그네위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느낌이다. 그는 겉으로 볼때는 불친절한듯 보여도 정말 순수한 질문과 대답들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열증의 혼란속에서. 황량한 북구의 버려진 공간에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법한 이방의 공간에서. 혼자 떨어져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와 나 사이의 모든 소통의 기회 또는 그러기 위한 시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것을 주관하는 신의 침묵 속에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나의 가슴을 쉼없이 망치질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가 이후  '페르소나', '가을소나타' 등으로 흐르면서 신의 침묵이 인간의 침묵으로 이어지는걸 보게 될때는 이유를 모를 역설적인 안도감마져 느끼게 된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영적초월에서부터 비탄스런 인간의 진실까지를 이야기해주는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또한 평생 잊지 못한다.

그의 영화 '무셰트' 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내러티브에 속지 않을 수 있고. 결국은 그녀가 구원에 이르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에선 '호스의 랑슬롯', '어쩌면 악마가', '돈' 으로 진행되는 그의 영화들은 정말 거부하고 싶은 인간의 진실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누구나 무의식의 심연 깊숙히 감추고 싶은. 그리고 전혀 인식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들. 

에릭 로메의 영화 '녹색광선' 을 16mm 필름으로만 보아야 제대로 석양무렵의 녹색광선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수많은 버전으로 영화를 찾아 보았던 경험도 기억에 생생하다.  

낡은 시네마때끄의 영사실에 쭈그리고 앉아 새벽무렵까지 친구들과 영화에 빠졌던 기억들. 어린 시절의 에너지의 방황들. 그 혼란스럽고도 사랑스러운 풍경들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 그의 모든 필모그라피를 다 살펴보아도 그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다양한 풍경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정말 지독하게도 보여주고 있다. 처음 그의 이름도 누벨바그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십여년전. 스크린을 통해 낯선 감독을 하나 알게 되었고 그 작품은 '여름이야기'였다. 

난니 모레띠는 그의 영화 행로자체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붉은산비둘기' 를 뒤늦게 볼때만 해도 나와 정말 닮은 사람이구나 하는 기묘한 동질감에 위로받았다. 귀청이 떨어질정도로 떠들어대는 그의 목소리에 그가 그토록 많은 대사들로 자신을 드러냄으로 인해서 숨겨지는 그의 속내는 무얼까. 하는 의문이있었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그의 지성의 행로들. '나의일기' 에서 '4월' 이후로는 '아들의방' 의 너머로 진행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세상은 변해 가는데 그 안에있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대답을 나에게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버지니아울프와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글들을 읽으며 시작된.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건가' 라는 의문을 푸는 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할까.

때문에 나는 인간의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또는 던져진 상황속에서 방황 하거나. 또는 무기력하게 놓여있는 그런 인간이 그려져있는 영화들. 그럼에도 마음을 잃지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영화에서.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영화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내가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