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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토요일자에 실린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를 보고 바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써 놓고 신문에 투고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분량도 많고 줄이기도 귀찮아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모든 언론사의 부분 또는 발췌 게재를 불허합니다. 전문을 수록할 경우에도 사전에 허락받기 바랍니다.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메갈은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라는 글을 보고 많이 배웠다. 대다수 한국 남자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여성학에 대해 무식하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는 대로 배우는 것이 ‘사람’ 되기 위한 첫 번째 덕목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질문이다. 한국 남자들이 여성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무는 건 문제가 있음을 모르거나 문제가 드러나는 걸 기피해서만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함부로 질문했다가는 심하면 ‘여성의 공적(共敵)’이 되고 가벼워도 바보가 된다. 이런 짓은 안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여성만이 발언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상식’을 낳고, 남자들의 발언을 ‘몰상식’과 ‘여성혐오’로 배척하게끔 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언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하려는 의지도 소멸할 수밖에 없다. 남자들이 여성문제에 무식한 건, 발언하지 말라는 압력이 그만큼 큰 탓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여성문제는 언제까지나 ‘여성만의 문제’가 돼 버린다. 그래서 없는 용기를 짜내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1. 정말 티셔츠 문구가 문제였는가?

내가 이 문제를 처음 접한 건 SNS에 링크된 신문 기사를 통해서였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이 얼마나 건전하며 훌륭하기까지 한 문구인가? 이건 ‘백마 타고 오는 왕자’를 고대하는 극소수 젊은 여성들에게는 경구(警句)겠지만, 절대다수 젊은 남자들에게는 오히려 구원의 메시지가 될 만한 구호였다. ‘금수저 왕자님’이 아니라도 좋다는데, 거기에 불만을 품을 남자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런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게임 개발사가 녹음해 둔 성우의 목소리를 지웠다는 보도를 보고선 분노가 치솟았다. 나도 그 성우와 같은 일을 당한 바 있기에 분노는 더 컸다. 게다가 그 게임 개발사는 이 사회 최고위 엘리트들과 부당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SNS에 넥슨이 페미니스트에게 불이익을 준 건 ‘자충수’라고 비판하는 짧은 글을 올렸다. ‘자충수’라는 단어를 쓴 것은 우리 사회가 이 정도 메시지도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한심하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짧은 글에 엄청난 분노를 담은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항의의 요지는 “우리가 티셔츠 문구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느냐? 저건 메갈을 지지한다는 표시다.”와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남성혐오이지 페미니즘이 아니다.”였다. 그 때 ‘메갈’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도대체 메갈이 뭐기에 저러나 싶어 웹서핑을 했다. 알고 보니 내막은 이랬다. “페이스북 메갈리아(일간베스트를 일베로 줄이는 예에 따라 이하 메갈이라 줄인다) 페이지가 남성혐오적이고 패륜적인 콘텐츠 게시를 일삼다가 여러 차례 계정 삭제를 당했는데, 여성 혐오 콘텐츠를 담은 다른 페이지들에 대한 조치와 비교하면 일방적이고 차별적이었다. 이에 페이스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위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했다.” 추가로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회원들의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내게 거칠게 항의한 ‘젊은 남자’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일베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감을 담은 패륜적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확산시키는 데 반대했다. KBS가 일베 회원을 기자로 채용했을 때도, 일베에 의해 변조된 로고가 SBS 방송화면에 나왔을 때도 항의했다. 그런데 왜 일베와 똑같이 혐오주의적이고 패륜적인 콘텐츠를 생산, 유포하는 집단에 대한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가? 왜 그런 집단 구성원들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주장만이 ‘혐오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치부되는가? 우리가 ‘일베 인증’ 한 남자들을 현실 세계에서 고립시키려 했을 때는 정당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메갈 인증’ 한 여자들을 현실 세계에서 억압하려 하자 부당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게 정당한가?

처음에는 ‘발랄한 여자들의 유쾌한 반란’에 과민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렇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저들은 6.25 전쟁을 ‘고기파티’라 칭하고 전사한 군인들을 ‘육병기’라 불렀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홍어들이 제 고향 용궁에 가겠다는데 왜 막노?”라고 한 일베의 정확한 미러링이지만,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인간 일반’의 고통에 대해서는 공감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물론 일부의 빗나간 발언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홍어’도 일베 일부의 발언이었다. 산발적인 패륜 발언보다 더 큰 문제는 메갈의 대화 플랫폼이 일베와 똑같이 패륜성을 확대 강화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남성의 언어로 짜여진 담론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유효한 수단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봤다. 여성문제를 남자 대 여자의 진영 문제로 단순화한다면, ‘저쪽 진영에 일베가 있으니 우리에게는 메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세 인식 면에서나 문제 해결 방식에서나 사드 배치 주장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사드는 북핵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주장은 군사적 대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 주장으로 인해 북핵에 반대하는 국제공조는 힘을 잃었다. 게다가 사드 배치는 ‘북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메갈의 방식도 일베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러 ‘적대적 공존’의 기반을 확대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분단체제를 무너뜨리고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절차와 방법이 중요하듯, 성차별 체제를 무너뜨리고 양성평등 체제로 가는 과정에서도 절차와 방법이 중요하다. 메갈의 방법이 남성 위주로 짜여진 담론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유효한 방법이라 해도, 그건 ‘전쟁의 방법’이었다. 전쟁은 분노와 굴욕과 보복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평화적인 해결 방식이어야, 해결 이후에도 평화가 보장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정희진씨 칼럼 제목이 ‘메갈은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였다.

2. 메갈이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일베’는 누구인가?

메갈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감을 패륜적 언어로 표현하는 일베의 행태를 뒤집어 복제해 보여주는 ‘미러링’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김치녀, 된장녀, 맘충, 꽃뱀이라는 용어는 이 커뮤니티에 의해 씹치남, 한남충, 애비충, 좆뱀으로 반사되어 한국 사회에 비춰졌다. 이 반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을 시험하는 것이 곧 여성운동이라는 말은 충분히 이해했다. 자기가 얼마나 부당하고 불공평한 현실에 놓여 있는지를 모르고서야 그런 현실을 개선, 개혁하겠다고 나설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국가와 시민사회는 일베와 같은 남성으로서 교직(交織)된 존재’라는 주장은 명료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기에서 ‘같은’이 사상, 취향, 정서, 태도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동성’이라는 사실만을 지적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 취향, 정서, 태도의 차이쯤은 무시해도 좋다고 보는 것인가? 교직물에는 각 섬유의 혼용률을 기재하는 것이 원칙 아닌가? 물론 이 사회 상층부에 일베와 같은 사상과 정서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99%의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은 정확히 일베 사상의 핵심에 닿아있다. 공공연히 내뱉지 못할 뿐 이와 똑같은 생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는 무척 많다. 게다가 일베는 현 정권을 가장 열렬히 지지하는 그룹 중 하나다. 그럼에도 아직은, 한국 시민사회가 이런 발언을 용납하지 않는다. 발언한 당사자는 파면 당했고,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표출하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시민적 합의가 형성된 상태다.

일베는 시민사회의 아웃사이더이며, 그것도 사회적 제재를 받아 마땅한 범죄적 아웃사이더다. 일베의 패륜 발언들은 종종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된다. 현재 많은 ‘젊은 남자’들이 일베를 패륜집단으로 취급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일베와 같은 남자’라는 말은 참기 어려운 욕이다.

메갈이 일베 사상에 친화적인 현재의 지배 질서와 담론 구조를 공격하려 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메갈은 일베의 패륜적 언어를 복제하면서 공격 대상까지 복제해 버렸다. 그들은 모든 한국 남자를 ‘일베와 같은 남자’로 규정하여 일베에게 한국 남자의 대표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고선 일베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시민사회의 잠정적 합의에 힘입어, 아무 거리낌 없이 한국 남자 일반을 조롱한다. 그들은 한국 남자들이 성적으로 무능하다고 조롱하며 남자 성기 절단 사진을 올려놓고 함께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월 수입 200만원 내외의 남자를 한남충 중에서도 저열한 존재인 ‘200충’이라고 부르고 지방대 남학생들을 지잡충이라 부르며, 더치페이를 루저페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가장 좋은 남자는 백인 남자인 갓양남(God洋男)이다. 그들은 ‘번식탈락’으로 멸종시켜야 할 존재인 씹치남이 갓양남에게 살해당한 것을 경축한다. 그들이 씹치남을 사면하는 조건으로 ‘성차별의식 극복’을 내세운 것은 지극히 정당하지만,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사면 조건이 ‘외제 승용차’가 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게다가 그들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까지 거리낌 없이 놀이 대상으로 삼는다. 남자 아기는 한남유충이고, 남자 어린이는 좆린이다. 일베에게 루저라고 불리는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메갈에게는 200충이라고 불린다.

메갈이 공격하는 대상은 여성을 제외하면 일베가 공격하는 대상과 상당 부분 겹친다. 일베에 맞서 싸우는 조직이 어쩌다 일베가 공격하는 대상을 함께 공격하게 됐을까? 남성 대 여성의 문제보다는 금수저 대 흙수저의 문제를 더 예민하게 의식했기 때문은 아닐까? 메갈은 당연히 일베가 아닐 뿐더러 일베에 가장 적대적인 그룹이지만, 메갈과 일베의 연합 공격 대상이 된 ‘흙수저’ 남자들에게는 일베의 가장 강력한 동맹군이기도 하다.

3. 현재와 미래의 경계선상에 있는 ‘젊은 남자’들의 분노는 무시해도 좋은가?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하고 싶은 현상만을 모아서 자기를 둘러싼 세계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 한계다. 정부는 자전거 타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로 사대강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환경운동 단체는 녹조로 뒤덮여 썩어가는 강물로 사대강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러니 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이 일어나고 성폭행 피해자가 가족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인도의 성차별 현실과 한국의 성차별 현실이 본질상 다를 바 없다고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부당하지 않다. 그런데 메갈과 같은 행동이 있어야 이 현실이 바뀔까?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의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현재의 중장년층이 이해하지 못하는 청년층의 문제도 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의사고시 등 국가 엘리트 충원 시험에서 여자 합격자 수가 남자 합격자 수를 앞지른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다. 예비 엘리트 양성 기관인 특목고 학생들은 60-80%가 여자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은 학생회장이나 학급회장이 될 꿈도 꾸지 못한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는 부회장이며,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도 “공부 잘 하는 남자애들에게 스펙까지 쌓게 할 수는 없다”는 견제를 받는다. ‘이 현상이야말로 그동안 여자들이 얼마나 억압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주장을 애써 반박할 생각은 없다. 요즘 남자 중학생들은 성적이 왜 이렇게 나쁘냐고 야단치면 “내가 여자인 줄 아세요?”라고 반문한다. 이들은 이미 ‘여성 상위 시대’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다. 빠르면 20년, 늦어도 30년 안에 국가와 시민사회를 이끄는 엘리트군(群)에서 여성이 과반수를 점할 것임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공정한 경쟁 조건에서는 여자가 평균적으로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수용하면, 현재의 성차별 문제와는 다른 ‘미래의 성차별 문제’가 보이게 마련이다. 한국의 대다수 젊은 남자들은, 초중고등학교 때 ‘평균적으로’ 여자들보다 공부를 못했으며,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동기 여학생들이 어학연수나 인턴쉽 과정을 통해 ‘스펙’을 쌓는 동안 군대에서 학업 단절을 겪었고, 다시 ‘공정하고 평등한’ 조건에서 취업 경쟁을 해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은 이 상황을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 느낌을 공공연히 표출하지 못한다. 그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여자 선생님들(유치원 100%, 초등학교 90%, 중학교 70-80% 정도)에게 “남자가 양보해야지.” “남자가 똑같이 그러면 쓰나.” “남자가 배려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세대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왜 여자가 남자보다 낫다면서, 게다가 남자들에게는 군 복무라는 핸디캡까지 주면서, 남자더러만 양보하라고 하는가?”라는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작금의 정의당 성명 철회 사태가 진보적인 남자들조차 성차별 현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정의당에 항의한 젊은 남자들은 스스로 ‘형평성’ 문제만을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민중은 개돼지’ 발언도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발언이 사회적 징계 대상이 된 것은 반(反)윤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갈이 생산, 유포해 온 콘텐츠들에 정치적 함의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표현방식이 반윤리적인 한 똑같이 제재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의당이 애초 ‘사회 상규(常規) 대 패륜’의 문제를 노동문제나 젠더문제로 잘못 인지하여 섣불리 성명을 냈다고 보며,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남자와 여자 사이에 공평성이 확대되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성우의 목소리를 삭제한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메갈 편들면 메갈’이라는 전쟁의 논리로 메갈 지지 의사를 표현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것은 광기 어린 마녀사냥이라고 본다. 하지만 메갈에 대한 비난과 이런 광기를 하나로 묶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성차별에 항의하는 여성 전부를 메갈과 하나로 묶는 것이 부당한 것처럼.

게다가 이런 불만이 누적되면 자칫 혐오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명백한 혐오범죄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혐오감을 칼부림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하지만, 패륜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혐오범죄라고 본다. 그런데 “너희가 혐오하면 우리도 혐오하겠다.”는 선언과 실천으로 혐오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기대효과가 의심스럽더라도 “혐오범죄 저지르지 맙시다.” “여성/남성에게 혐오감을 갖지 맙시다.”라고 거듭거듭 간곡히 호소해야 하는 건 아닐까? 모든 범죄는 현실의 반영이며 불만과 욕망의 반윤리적 표출이다. 현존하는 불만들을 해소하고 뒤틀린 욕망들을 교정하는 건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와는 별도로, 이것이 반윤리적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억제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패륜적 담론의 확산을 방치하면서 반윤리적 범죄가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일베가 한국 여성 일반을 패륜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에 메갈이 나온 게 정당하다면, 메갈이 한국 남성 일반을 패륜적으로 공격하는 건 무엇이 나오길 기대해서인가? 그렇게 해서 일베의 영향력이 축소될까 아니면 확대될까? 벌써 일베에 반대해 왔던 젊은 남성 커뮤니티들이 일베와 함께 ‘반(反) 메갈 전선’으로 결집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저들이 다른 듯하지만 여성의 진출 앞에서는 하나로 뭉친다. 저게 남자들의 본성이다.”라고 외치면, 여성의 미래가 밝아지는가? 과거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가들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들이 다른 것 같지만, 노동계급의 진출 앞에서는 하나로 뭉친다.”고. 그렇게 상대 세력을 하나로 뭉치게 해서 좋은 결과를 본 운동은 없다.

고통은 현실에 있으나 공포는 미래를 향한다. 현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과 미래의 공포를 씻어주는 일은 함께 해야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다. ‘메갈과 같은 여자로 교직된’ 국가와 시민사회의 엘리트군(群) 일부가 “한국 남자의 99%는 번식탈락시켜야 할 씹치남”이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흙수저 한남충’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이런 미래를 상상하는 건 물론 극단적이지만, 공포는 언제나 극단을 상정한다. 또 이런 ‘극단적인 상상’은 한국 남자 일반을 ‘일베와 같은 남자’로 치환하는 ‘극단적인 상정’과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 남자들에게 ‘역지사지의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애초 의도였다는 주장이 옳다손 쳐도, 이런 방식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패륜의 미러링을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일베가 그런다고 너희들도 똑같이 하면 되냐? 그러지 말고 함께 일베를 나무라자.”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너희들 덕에 한국 남자들은 전부 일베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잘 하는 일이니 위축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라.”라고 해야 하는가?

끝으로 젊은이들에게 꼰대짓 한 번 해야겠다. 자기 안에 ‘일베와 같은’ 성향은 없는지 성찰했으면 한다. 모욕으로는 결코 성찰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