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
- 작성일
- 12-06-19 10:42
인문학 공부를 하다보니 참 섭섭한게 많습니다. 인문학 전공자의 지식은 왜 그렇게 도매금으로 취급을 당하는지..
대학에서 조교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일반인이 전화로 물어보는게 이런 겁니다.
"한국사 교수님 좀 바꾸주세요. 우리 집 족보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어서.."
"유비, 장비, 관우가 실제 인물이잖아요. 내 친구는 아니라는데.. 내기를 했거던요. 중국사 전공 교수님이 좀 판정해주세요"
이런 경우 아 정말 욕이 입에서 나오죠. 제 경우는 약과죠. 국문학과 조교 말로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하나 하나 묻는다더군요.
병원에서 진찰만 해도 진료비를 무는게 상식입니다.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을 왜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들이밀까요?
우리 나라에서 소위 전문가에 대한 대우가 없습니다. 전문가를 종부리듯 부릴 줄은 알고 비꼴 줄은 알지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안하는 거죠.
대학교수가 연구실에서 저런 전화를 받고 있어야 할까요?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음씨 좋은 한국사 교수님이 전화로 일일이 응대를 해주니깐 할아버지 한분이 보따리를 들고 찾아 왔어요. 과사무실에 보따리 턱 던져놓고 이 책들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묻는 겁니다. 보니까 조선후기에 나온 <추수기>더군요. 양반 집안의 땅의 면적, 소출량이 기록된 문서지요. 이게 몇세대 것이 모여 있으면 역사 기록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자료는 되지만, 예술 작품이 아니라서 돈으로 따질 거리는 못되는 겁니다. 게다가 학자에게 돈으로 값을 매기라는 것은 상식 이하의 소리죠.
교수님이 웃으시며 '값은 모르지만 이런게 자료로 연속되게 모여있으면 공부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네요'하고 말씀드리니깐.. 당장에 "그러니깐 얼마 주겠냐고요!"하고 말하는 겁니다. 교수님이 "제게는 이게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사 전공하는 다른 교수님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할아버지"됐수! 그냥 고서적상에게 팔아야지.. 내가 선심쓰서 좋은 가격에 주려는데.. 알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휑하니 나가더군요. 커피 대접한 거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번역가 안정효씨의 말에 의하면 외국에서는 전문가와 상담을 할 때 시간당 얼마의 자문비를 낸다고 합니다. 어떤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에 법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그 쪽 전문가에게 미팅을 신청해서 조언을 듣고 지불을 하는 셈이죠. 우리 나라는 전문가, 특히 인문학 전문가에 대한 대우는 제대로 된 대우를 하는게 아니라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도 남발합니다. <역사스페셜>의 전화 자문을 받은 교수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니깐 PD라는 분이 "방송국으로 함 오시죠.." 이러는 겁니다. 자신들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따가는데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데 차비까지 들여서 와달라는 겁니다.
암튼.. 제가 다른 사람과 달리 잘 하는 것 하나는 전문가에 대한 대우를 잘 합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다보니까 영화평론가와 영화계에 있는 분들을 만나서 술자리를 하게되면 그 날 밥값, 술값는 제가 냅니다. 그 분들이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어서 지불한다기 보다는 그 동안 여러 유혹이나 멸시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한우물을 판 것에 대한 격려와 감사의 차원에서 대접하는 겁니다. 얼마 전 베팍의 은우 유저를 만나서 같이 술을 한적이 있는데 이 붕은 한국고문학 전공자입니다. 술자리를 하다가 전문가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술 맛이 착착 달라붙어서 당연히 제가 1,2차 술값을 냈죠.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밑에 일주매님이 만든 자료를 그대로 퍼가서 써먹는 개호로 자슥들 때문입니다. 술값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자료가 너무 좋아서 사용하려는데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보는게 그렇게 힘들까요? 옆에서 보기에는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 전문가 분들의 피와 땀이 들어간 겁니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런 분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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