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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타이거즈 3대 불가사의 시리즈 - 1.방수원의 노히트노런

작성일
09-04-23 15:35
글쓴이
마음만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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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기아 타이거즈 팬들의 염원은 V10 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우승은 1997년으로 9번의 우승은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가 이뤄낸 것입니다.

기아는 2001년 8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 구단을 사들여 타이거즈라는 명칭을 그대로 이어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MBC 청룡은 LG그룹에 인수되면서 LG트윈스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로 이름이 바뀌는 등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구단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팀의 이름이 모두 바뀌었으나 기아는 V9을 이룩한 타이거즈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여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기아 타이거즈는 2001년 시즌 중반에 팀을 인수하여 2008년까지 8시즌 동안 5-3-3-4-8-4-8-6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정규리그 2위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면 최종 성적은 3위로 기록됨)

8시즌, 아니 2001년을 빼면 7시즌 동안 4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궜지만 우승은 하지 못했죠.


20세기(이렇게 쓰니까 꽤나 먼 옛날 이야기 같네요)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 프로야구판을 호령하던 시절,

당시 타이거즈팬들은 롯데팬들이 말하는 '가을에 야구하자'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규리그에서 죽을 쓰고 있어도 당연히 포스트 시즌은 진출하는 것이고,
 
또 코리안시리즈만 올라가면 한국시리즈 우승은 당연했어요. (실제로 해태 타이거즈는 코리안시리즈 우승은 있어도 준우승은 없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린 1986년부터 2000년까지 4위 밑으로 떨어진 것은 1998년의 5위가 유일했습니다.


요즘의 기아 타이거즈를 보고 있자면 과거 해태 타이거즈팬으로서 맨날 해태에게 당하던 삼성, 롯데, 빙그레(현 한화) 팬들의

심정을 알겠더군요.

어쨌든 과거 해태 타이거즈를 돌이켜보면 팬으로서 참 뿌듯합니다.

하여 당시 (어쩌면 일부) 해태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서 농담으로 회자되던
 
80년대 해태 타이거즈 3대 불가사의를 한 번 써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정식판도 아니고 그야말로 농담에 지나지 않은 얘기이니 너무 정색하지 말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자료야 인터넷 검색하면 많이 나올 것이고, 따라서 상당부분은 그런 기록물들을 무단 차용하여 쓸 예정이니 일단 양해바랍니다.

연재순서는

1. 방수원의 노히트노런

2. 김봉연의 도루    http://www.baseballpark.co.kr/bbs/board.php?bo_table=kbo&wr_id=41467

3. 차영화의 홈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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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해태 타이거즈 3대 불가사의 시리즈 - 제1부 방수원의 노히트노런


84년 5월 5일 광주구장. 선발과 중간을 오가던 그는 전날까지 승리 없이 시즌 2패만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삼미전에 선발 등판해 9회까지 볼넷 3개만 내준 채 삼진 6개를 곁들여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냈다.

8-0 승리. 외야플라이도 4개에 불과할 정도로 타구는 대부분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해 1승8패를 기록했으니 그에겐 시즌 유일의 승리였다. [네이버 기사에서 발췌]


위 기사에서 그가 바로 방수원입니다. 그리고 저 승리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입니다.

방수원은 1960년생으로 광주일고-영남대3년 중퇴후 1982년 프로야구 출범시 고향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합니다.

해태 타이거즈 창단시 투수는 불과  6명, 그것도 투타를 겸하는 김성한까지 포함해서였습니다.

방수원은 구질구질한 변화구(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를 주무기로 하여 광주일고 시절 동기인 이상윤과 함께 고교야구를 제패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로에서는 그 구질구질한 변화구가 잘 먹히지 않아 중간계투나 패전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초창기 프로야구는 지금처럼 투수 분업이 없이 잘 던지는 선수는 선발, 그다음 좋은 선수는 계투, 안 좋은 선수는 패전마무리

요런 식으로 던졌습니다.


방수원이 해태 타이거즈 프로 첫 경기 선발투수였다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1982년 3월 28일 구덕구장에서 롯데:해태의 경기가 양팀의 개막경기였는데 그 경기의 해태 선발투수가 방수원이었습니다.

당시 해태 김동엽 감독은 다른 투수들의 컨디션이 별로여서 변화구가 좋아보이던 방수원을 역사적인 경기의 선발투수로

기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방수원은  1번 정학수 볼넷-2번 엄태섭 유격수 실책-3번 김정수 볼넷으로 무사만루를

허용한 후 4번 김용희 안타 - 5번 김용철 안타를 맞고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강판됩니다. 경기는 14-2로 롯데 승리.

해태 타이거즈의 첫 경기 선발투수이자 첫번째 패전투수였던 것이죠.


학생야구에서 통하던 방수원의 변화구는 프로야구에서는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타순이 한 바퀴만 돌고 나면 눈에 익어

난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해태 코칭 스탭은 방수원을 1~2이닝 중간계투 및 패전처리 요원으로 활용합니다.

어쩌다 선발예정투수가 문제가 생기면 가끔 땜방 투수로 나오곤 했죠. 방수원이 선발로 나오면 "오늘 경기는 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아주 편안하게 경기를 보았습니다.

1989년 은퇴하기까지 18승 29패 28세이브 평균자책점 3.75가 통산 성적이니까 중간급 이상의 계투요원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당시가 파이어볼러들이던 선동열, 최동원의 시대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방수원급의 변화구 주무기 투수들은
 
그다지 빛을 못 본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1984년 5월 5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김응룡 감독이 부임한 뒤로 저는 2이닝짜리 투수였소. 그런데 그날 선발투수가 펑크났나 봅니다.
 
유남호 코치가 갑자기 선발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박제된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2시경기였는데 날씨가 참 화창했소. 2회를 마친 뒤 난 내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평소처럼 덕아웃으로 들어와
 
스파이크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신었죠. 그런데 더 던지라고 합디다. 4회 선두타자(
김대진)에게 첫 볼넷을 내주자 아니나 다를까,
 
김응룡 감독이 나오더라고. 바뀔 줄 알았지. 그런데 웬일인지 다시 들어가네. 아마 준비된 투수가 없었나 봅니다.
 
5회까지 7-0으로 앞섰는데 6회 선두타자(김정수)를 볼넷으로 내보내니 감독이 또 나오려다 도로 들어가더라고요.”

“노히트노런보다 완투를 해냈다는 게 더 기뻤어요. 난 2이닝짜리 투수가 아니다, 믿고 맡겨만 주면 나도 완투를 할 수 있다는 걸
 
김응룡 감독에게 보여줬다는 게 더 흥분됐어요.”

그것은 그의 생애 4번째 완투이자, 유일한 완봉이자, 마지막 완투였다.
 







위 잡지 사진이 당시 방수원의 노히트노런을 보도한 것입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 방수원의 외모는 추남쪽에 가까워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당시 히트하던 영화의 제목을 따 "ET",

또는 "외계인"이었습니다.

방수원은 고교시절 광주일고 1년 후배인 선동열에게 자기가 주무기로 쓰던 슬라이더를 가르쳐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1년 후배? 요 대목은 좀 이상한데 모든 기사에 1년 후배로 나오더군요)

방수원이 없었다면 선동열의 전매 특허가 슬라이더가 아닌 다른 구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방수원은 노히트노런 외에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프로야구 풍습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87년의 어느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나왔다가 한 타자만 잡으면 세이브를 기록할 수 있는데 당시 김응룡 감독이 교체하러 나와

공을 달라고 하자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뒷걸음치다 결국 2루베이스 근처에서 공을 뺏기고 강판됩니다.

이 날이 휴일이었고 TV로 중계되는 경기였는데 이 때문에 그는 김응룡 감독의 분노를 사 1군 엔트리에서 빠져 2군으로 갔다가

한 달만에 다시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김응룡 감독은 이 사건 이후 투수교체시 마운드에 오르지 않고 김인식 수석코치(현 한화 감독)를 올려보내고

다른 팀 감독들도 김응룡을 따라하기 시작하면서 감독이 아닌 코치가 투수를 교체하는 풍습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강속구가 아닌 변화구, 일명 아리랑볼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방수원,

그 누구도 그가 이러한 대기록을 작성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올드 타이거즈 팬들은 이를 해태 불가사의 NO.1으로

꼽고 있습니다.


====================================  1부.  끝. [이 게시물은 ▶◀ dr.레인님에 의해 2009-04-25 21:57:30 한국야구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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