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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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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했던 허기.

작성일
09-05-30 03:13
글쓴이
퍼스나콘 울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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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965
댓글
7단계
시간별 역순 댓글
무수히 많은 식사를 했다.

하루종일 TV가 쏟아내는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접할때마다. 인터넷에서 그의 자살에 대한 이해와 반대글을 보면서도 그가 마지막으로 쓴 유서를 읽어가면서도. 그럴때마다 수시로 허기가 져서 무언가를 자꾸만 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도 공평하지만도 않다지만, 온갖 불행과 행복으로 얼룩졌던 삶은 숨이 멎고 나면 너무도 고요해진다.
생의 이력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스스로 내려놓았을 그 심정을 생각하며.
내 머릿 속을 어지럽히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애써 침묵했다.  

아무리 먹어내도 비어 있던
그러나 결국 참아야만 했던. 채워지지 않았던. 허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 혼란이 정리 되면 울음이든 뭐든 토해내리라.

정리는 곧 인정하는일 이다. 그 순간에 이르면 나는 내가 울지 않을 수 없을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한번은 그렇게 해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다짐을 하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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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역에서 열린 추모제를 멀찍이 서서 지켜보았다.

왜 울고들 있는 지 알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대체 무엇때문에 회한하고 있는 지 물어보고 싶었다.
조문을 하는 것으로, 울어버리는 것으로 그리고 후련해지는 것으로 이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절대로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변화와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눈물로 가득 메워진 그 자리에서 분노와 후회와 사랑, 어떤 것도 함께 하기 싫었다. 사진 속 그의 얼굴 앞에서 내 감정을 쏟아내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영정을 바라보고 국화를 바치고 묵념을 하면서도.

형벌처럼 슬픔을 어깨에 짊어진채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는 원망하지 말라 했는데

원망할까봐

그는 미안해 하지 말라 했는데

미안하다고 절규하게 될까봐

노무현을 대통령이란 직함에 올려 놓고 "어디 어떻게 얼마나 잘 하는지 한번 지켜본다" 라는 불필요한 쌀쌀함으로 그를 대했는지 모른다.
행동하고 애정섞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내막을 알려고 하지 않고 '기대'와 '실망' 이라는 이름 하에 수시로 그를 내동댕이 쳤었다.

'포괄적 뇌물 수수 '혐의'' 라는 입에도 익숙치 않은 용어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그토록 잔혹하고 저열한 수사에 시달렸을 때도 그는 감당할수 있을거라고 외면했다.

마음 가는대로 원통해할 자격이 있나. 정녕. 그의 앞에서? 이제와서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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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리를 빠져나와 갈피를 못잡고 시내를 터벅터벅 걷는 도중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 안에 잔뜩 응어리진 것들이, 억지로 밀어 넣었던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허름한 건물 화장실로 서둘러 들어갔다.


비로소 울었다.

구석진 작은 공간 안에서.

온갖 오해와 간계로 씌워진 치욕을 안고 떠난 그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사람' 노무현이 애달프고, 애달파서.
너무 힘들어 글조차 쓸 수 없고 책 한자 읽지 못한 고통을 헤아리니. 쓸쓸했을 생의 마지막이 서글퍼져서.
뒤늦게 미련을 떠는 내 비루한 인생 또한 서글퍼져서.
그가 국민에게 건넸던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라는 말을 하기 이전부터
진즉에 버리고 또 버렸던 사람인데 이렇게 다시 노무현이란 인간을 가슴 속 깊이 담아두게 하는 그가 원망스러워서.


아무도 없는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그제서야 마음 놓고 끅 끅 대며 뱉어내었던 울음, 모든 감정들은 그를 향한 나만의 '의식'.
그는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야 한다는 '통과 의례'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관계란 그런 것. 갑자기 쑤욱 멀어지는 느낌. 그 사실을 인정하는 한순간. 왈칵 쏟아지는 감정.

몸을 추스르고 나와 세수를 하는 동안 그놈의 허기가 또 도지더라.
잠시나마 나를 둘러쌌던 그 애통함은 온 데 간 데 없이 미어지는 배를 움켜쥐고 아무 식당에 들어가 국물과 밥을 먹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어찌나 잘 들어가던지, 행복한 표정으로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어이없고 우습던지.


단전 깊숙한 곳에 불편함에도 고집스럽게 꾹꾹 눌러 넣고 있던 어떤 무언가를, 어지럽게 교차했던 만감을, 해소한 탓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위로 올려 머리에 남기고 가슴에 새기고 나서야 되찾은 '진짜' 허기를 나는 허겁지겁 달랬던 것일까.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그의 말은 틀림이 없다.

죽음으로 인해 나에게 붙어있는 목숨과 삶을 다시금 확인하는 살이.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비애가 걷힌 뒤 먹고 마시고 싸고 웃고 지지고 볶는 일들은 숭고한 것들이 대부분임을.
그것이 내 허식과 치레를 가리는 도구라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 이 생의 근원 같은 게 아닌가.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사는동안 각자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바라보며 걸어가야하는것이라면. 거기엔 밥 심이 중요하다는 걸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발걸음을 하는 동안 모든 게 멀리 느껴졌다.
무심한 얼굴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낯설었다.
또 세상이 꺼진듯 슬픔과 절망을 미처 물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낯설었다.
무엇보다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내 길을 걷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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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시작이었음에도 파란을 일으키며 대안 후보로 급부상하던 시절.
'노사모'의 일원이었던 적에도
나는 그를 온전히 믿지 않았다.

내게 그는 언젠가 날아올 꿩을 기다리며 선택한 닭이었다.
최악을 막아낼 유일한 '차악' '차선'.

노사모들과 함께하는 가운데서도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올라섰을 때 노사모란 단체는 그쯤에서 해산해야 한다고 더욱이 나 같은 불순분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지지를 접겠노라고 농담을 가면 삼아 털어놓곤 했었다.

그래서 다들 16대 대통령 노무현을 기쁘게 외칠 때,
나는 주변인으로서 환희에 가득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노무현에 대한 확신을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날카로웠다.
잘해낸 일은 당연스러운 일로 여겨졌고
실수가 보이면 가차없이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내치고 말았다.


그렇게 보수와 진보, 대중, 지지자, 열린우리당에게마저 외면 당했던 그는 홀로 물러났다.

그렇지만 그는 낮은 자리에 머물게 되면서 더 유명해졌고,
나 또한 진심으로 노무현을 좋아하게 되었다.

소탈하고 배려 넘치는 그 모습이 한없이 귀엽고 멋져보였다.. 웃음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평온함을 그들은, 우리는 용납치 못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결국 그는 역사 속에서 정치인생에 걸맞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이런 세상의 이치를 잊고 그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앞으로 남아있는 세월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그는 그만큼 힘들고 외로웠었나 보다.
내가 애통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다.
얼마나 쓸쓸하고 씁쓸했을까. 혼자서.

가끔, 언젠가는 그와 내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왔다.
꼭 한번쯤은 그렇게 그의 주름 깊은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에게 술 한잔 따라올렸으면 했던 당돌한 바람도 있었다.
함께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아보고 싶었다.

한 번도 직접 느끼지 못했지만,

따스한 목소리와 온기 가득한 그의 손을 그리워했다.

그의 살아 생전 미소를 생각하면 견디기 어렵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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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없어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명확한 세상의 진리 하나가 이토록 서운하고 아프게 다가오는구나.

영악하고 당당치 못한 인생들은 보란 듯이 남은 생을 살아갈 텐데.
그정도 크기의 잘못과 오해도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그를 떠나보냈구나.

자신의 올곧은 자존심과 양심을 이기지 못해 '혼자서' 그렇게 괴로웠었구나.

한 줌 가슴을 쥐어뜯고. 뒹굴면. 이 분노, 부끄러움, 후회, 죄책감. 가라앉을까.


자고 일어나서 문득, 아직도 이 현실이 잊혀질까, 또 한번의 정리와 인정, 또 몇 번의 눈물이 흐를까 두려운 마음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참 좋아하는 이름 석 자를 또박 또박 발음해본다.
이내 몇 번이고 되뇐다.

노.무.현 노.무.현

죽었어.

이제 없어.

노.무.현. 죽었어. 이제 없어.

.
.
.

혼자 가시는 여정, 부디 모든 고통일랑 전부 씻어냈기를.
어디에서든 그저 행복하시길..



[이 게시물은 ▶◀영계소문님에 의해 2009-05-30 12:00:22 불펜 게시판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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