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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의 진화에 마무리는 없다.

지난해 38세이브로 팀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왼손 마무리 봉중근(34·LG)이 돌아올 시즌을 위해 ‘새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서 몸을 만들고 있는 봉중근은 새 구종인 슬라이더를 손에 익혀가고 있다. 직구와 커브, 서클 체인지업에 이은 4번째 구종이다.

LG 봉중근

봉중근은 슬라이더가 생소하지 않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시절인 2002년까지만 해도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6승(2패)을 거둔 2003년을 보내며 각이 크게 도는 커브와 체인지업을 집중적으로 연마한 뒤로는 슬라이더를 멀리 했다. 봉중근은 “사실, 그 뒤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며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아예 던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10년만에 슬라이더를 다시 찾아나서고 있다. 왼손 타자를 압박하기 위한 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봉중근은 시속 140㎞ 중반대의 직구를 기본으로 각이 크게 돌아 떨어지는 너클커브와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돌아나가며 주저앉는 체인지업을 던진다. 왼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빠르게 휘어나가는 구종은 마땅치 않았다. 국내무대에서도 벌써 8번째 시즌으로 자신에 대한 익숙함을 역습하는 카드일 수도 있다.

봉중근은 “왼손 타자를 상대로 이따금 어렵게 갈 때가 있어서 새로운 패턴을 찾고 싶었다”며 “지난 시즌 막바지에 몇 차례 던져봤는데 괜찮았다. 시즌 개막까지는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실전 모드’로 전환하는 2월말부터 슬라이더를 본격적으로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봉중근이 왼손 타자를 앞에 두고 눈에 띄게 힘든 승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평균 투구수 4.15개를 기록한 봉중근은 왼손 타자를 만나서는 평균 투구수 3.93개를 던지며 비교적 쉽게 승부했다. 그러나 오른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 2할1푼, 왼손 타자 상대 피안타율 2할2푼2리 등 기록에서 나타난 것처럼 왼손 타자에 대한 왼손 투수의 강점은 두드러지게 살리지는 못했다. 봉중근 입장에서는 왼손 타선을 전보다 사뿐히 넘어가고 싶은 것이다.

봉중근 슬라이더 그립

봉중근은 직구 구속과 10~15㎞ 정도 차이를 보이는 슬라이더로 왼손 타자 상대 ‘피칭 메뉴’를 다양화할 것으로 보인다. 봉중근의 피칭 패턴에 익숙한 오른손 타자들을 상대로도 간간이 쓴다면 ‘특효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

봉중근은 새 시즌에 더욱 완벽한 마무리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가슴 졸이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라 지난해 방어율 1.33의 화려한 성적에도 WHIP(이닝당 출루 허용) 1.16을 기록한 것에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다. 오승환의 지난 시즌 WHIP는 0.83이었다.

봉중근은 WHIP를 1.00 안쪽으로 끌어들일 작정이다. 그리고 슬라이더가 그 뜻을 이루는 데 효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