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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8]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대학교 1학년때 야구를 그만둔 투수가 한 명 있습니다.

운동부의 '군기'가 세던 시절이라 선배와 코치들에게 늘 독한 기합을 받았고, 그러다 무릎에 관절염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가세가 기울었던 이 청년은 체육특기생이 아니면 학비도 대기 힘들어 대학을 그만둡니다.

트럭 운전수로 일했습니다.

8톤 트럭을 몰며 박스를 날랐습니다.

전화기를 팔거나, 전화선을 깔아주는 일도 해봤답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 전직 야구선수는

지방의 한 유통회사에 취직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두달 동안 사회인야구 선수로 뛰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땠을까요

그라운드 밖에 모르던 야구선수

무릎을 다쳐 선수생명이 끝난 전직 운동부

군대를 다녀와 트럭을 몰다 겨우 직장을 잡아, 회사 야구부에서 공을 던진다면.

저 인생의 만일 여러분의 삶이었다면, 그 지점이 얼마나 절망스럽고, 또 쉽게 좌절했을까요.

저 청년의 포지션은 [내야수]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때 투수였는데 중학교에 가보니 잘하는 선배들이 많아 포지션을 바꿨답니다.

말하자면 선수로서 '그저 그런' 학창시절을 보냈고

그마저도 이미 그만 둔, 트럭을 몰던 직장인 야구동호회원이었죠.

그런데 말이죠.

이 청년은 녹색 그라운드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기가 참 어려웠나봅니다.

틈틈이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다녔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소속팀 감독이던 분을 야구장에서 만납니다.

성실했던 제자가, 운동을 그만두고 사회인야구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 감독은

우리 팀에 와서 배팅볼을 던지며 연습생으로 뛰라는 제안을 합니다.

연봉은 300만원이었답니다.

[월급]이 아니고 [연봉]말입니다.

야구가 그리워지던 이 청년은, 스물셋의 나이에 뒤늦게 고교시절 은사의 소속팀에 입단합니다.

그리고 배팅볼을 던집니다.

하루에 수백개씩

선배와 동료 타자들이 [제일 치기 쉬운 코스로] 공을 던져줍니다.

그렇게,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와 싸우지 못하고 우리팀 타자들의 [스파링파트너]가 된지 2년째.

이 연습생은, 정식 선수로 등록하고 1군 마운드에 섭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투수는 그로부터 17년 동안 그 팀의 마운드에 섭니다.

2,080이닝을 던졌고

1,341개의 삼진을 잡아냈으며

120번의 승리, 그리고 60번의 완투를 기록합니다.

그보다 많은 이닝을 던져본 투수는 KBO역사상 딱 4명

그보다 삼진을 많이 잡아본 투수는 KBO역사상 딱 6명

그보다 많이 이긴 투수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딱 10명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선수는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등판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두번째 단락 첫째줄에서 이 청년(?)의 이름을 알아채셨을 것이고

아무리 눈치 느린 분이라도 여기까지 왔으면 제가 누구 얘기를 하는지 아시겠지요.

팬들이 김혁민에게 "너 이렇게 던질거면 그 등번호 내려놓으라"고 말하게 만드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선배

[EAGLES NO.40]의 아직까지는 유일한 주인공.

한 용 덕 입니다.

제가 요 며칠

코치진 인선은 새 감독에게 무조건 일임해야 된다고

출신 구단이 중요한 게 아니고 팀의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니 눈치보지 말고 감독 뜻대로 해야 된다고 말했죠.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한용덕 대행의 거취에는 관심없고 타이거즈 출신 코치들만 쌍수들어 환영하는가 보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저 역시 빙그레의 준우승 4번, 특히 해태에게 밀린 3번의 준우승을 모두 두 눈 부릎뜨고 직접 지켜 본 사람입니다.

김성한과 이종범에 대한 호감도나 관심을, 한용덕에게 갖다 붙여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깁니다.

제가 이글스를 좋아한지 올해로 25년째인데

야구팬으로 살면서, 한용덕이 우리 팀 유니폼을 입지 않았던 시즌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새 감독이 오고, 외부(?)에 있던 선배 야수가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리가 좀 애매해졌는데

야구에 대한 그분의 열정, 그리고 그분에 대한 팀의 관심에 균열이 생겼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경험 있는 감독이 필요했고, 또 새시설에서 강도높은 훈련을 시작할 2군에 이정훈 감독도 괜찮은 선택입니다.

그 사이에서 좀 애매한 관계가 형성됐을 뿐이죠.

제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냐는 제목을 달았는데요.

조만간 대전구장에서 1군감독 취임식 주인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빙그레가 한화로 이름을 바꿔달고 초창기 몇년

팀 투수진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한용덕은. 후배 이상목의 페이스가 나쁘면 선발 구멍을 메웠고

또 다른 후배 구대성의 페이스가 나쁠땐 구원 구멍을 메웠습니다.

팀에서 균열이 생기면, 언제든 그게 어디든 달려가 공백을 메웠단 말입니다.

이번에도 그걸 해냈습니다.

이 경험들이, 길지 않은 미래에 큰 결실로 찾아오길 기대합니다.

새로운 감독과 코치들을 환영하지만

한용덕 대행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다는 것.

한 대행께서 꼭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한화 팬까페에서 퍼왔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