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LG와의 플옵을 앞두고 한 원년베어스팬의 소회
- 작성일
- 13-10-16 15:14
저는 서울이 고향입니다.
아버님이 전라도, 어머님이 대구라는... 그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영호남 화합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뭐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 고향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었네요.
물론 명절이나 조부모님 기일에 친가에 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해태 해태 하는 소리들을 들었었고,
외가에 가면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삼성 삼성 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자랐지만...
그건 제가 응원팀을 선택하는 데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죠.
초딩시절 제가 왜 OB를 선택했는지 지금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결론은 이거인거 같아요.
'제일 잘하는 팀이어서...'
제가 프로야구를 처음 접한... 프로야구가 태어나던 1982년,
최고의 팀은 OB Bears였고, 최고 투수는 박철순선수였거든요.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역동적인 폼으로 강속구를 뿌려대며 연승행진을 달리던 박철순선수는 당시 저에겐 우상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선수가 속해 있는 OB Bears는 저의 응원팀이 되었고 말이죠.
제가 OB를 좋아하자 저희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너는 서울 사람인데 왜 MBC가 아니고 충청도팀 OB를 좋아하냐고...
당시는 OB가 당분간만 대전에 있고, 3년뒤 서울 올라가고... 이런거 전혀 몰랐습니다.
걍 위와 같은 이유로 좋아하게 된거죠.
여튼 서울 사람이 MBC아닌 OB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은 울 할머니 이외의 다른 어른들한테서도 꽤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MBC는 별로 안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팀 순서대로 나열해봤던 기억이 나는데...
OB-해태-롯데-삼성-MBC... 이랬던 기억이 납니다.
MBC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어요.
MBC는 당시 저에게 뭔가 뚱뚱한 이미지였거든요.
MBC 청룡하면 당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백인천과 에이스 하기룡이었고... 두 선수는 뚱뚱했던 걸로 기억해요. 또 기억나는 선수인 유종겸 선수도 나름 뚱뚱(?)했던 이미지로 남아있고...
반대로 OB는 박철순과 김우열... 그리고 꺾다리 신경식 호리호리한 선수들이...
뭐.. MBC도 간판 이종도선수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었고, OB도 윤동균이라는 뚱뚱한 선수가 있었지만...
걍 당시 제 머리속의 이미자가 그랬어요.
아이러니컬한건... 그때 MBC를 뚱뚱해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두산은 9개구단중 제일 뚱뚱한 팀 중 하나가 되었고... 반대로 LG는 제일 호리호리한 팀 중의 하나가 되버린... ^^;
그렇다고 해서 처음 씌어진 콩깍지는 제 눈에서 벗어지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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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1990년대가 됩니다.
OB는 이광환감독의 취임이후 암흑기에 접어들고...
딱 지금의 한화같은 이미지였죠. 신생팀인 쌍방울에게 창단첫해에도 밀려서 꼴찌를 기록하고...
반면 MBC는 1990년 LG라는 새 이름으로 멋진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함께 탄생해서 단 번에 우승을 해버리는...
90년대 초반 LG랑 경기를 벌이는 잠실야구장을 찾으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응원구호가 있었죠.
바로 'OB꼴찌'와 'LG바보'
LG에서 OB꼴찌를 외치면 소수정예 OB팬들은 LG바보로 맞받아쳤고...
LG선수들이 뭔가 실수를 해서 OB팬들이 LG바보를 외치면 LG팬들은 우렁찬 OB꼴찌로 맞받아쳤죠.
그런 시절부터 OB팬들과 LG팬들은 서로에 대한 투쟁심일 키워왔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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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은 OB의 암흑기 탈출의 시발점이 되었던 해였죠.
1992년 막장이 된 팀의 지휘봉을 잡은 프로야구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이 된 윤동균 감독은 5위를 기록하며 무언가 희망을 보여주고..
그 다음해인 1993년 6년만의 가을잔치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내죠.
당시 저는 고3이었고...
1993년 그 해는 대한민국 최초의 수능이 치뤄진 해이기도 했습니만...
프로야구에서 1993년은 각 팀에 레전드급 신인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주목 받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해태의 이종범, 삼성의 양준혁, 한화의 구대성, LG의 이상훈 등이 다 1993년 신인이었고...
OB에는 레전드가 되지는 못했지만, 1993년 이종범-양준혁에 밀려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따지고 보면 2005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신인이었던 오승환을 능가하는 기록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경원선수가 있었죠.
그리고 그 김경원선수가 1993년의 준PO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 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7월의 올스타전이 끝나고 시즌 후반기가 시작했던 여름방학 막바지 무렵...
독서실 제 자리에 OB의 남은 일정이 담긴 달력같은 표를 만들어 붙여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매일 700-1600을 통해 경기 기록을 확인하며,
스코어와 승리 및 패전투수와 함께 이기는 날에는 붉은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던 기억이...
7월 올스타전이 끝나고 OB의 순위는 5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4위와는 5게임 정도 뒤쳐진 5위...
(당시 4위가 직전해인 1992년 KS를 치뤘던 빙그레와 롯데 둘 중 하나였던건 확실한데 어디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잘... --a)
그리고 LG는 그보다도 앞선 3위를 랭크되어 있었죠.
올스타전 이후 후반기...
제 독서실 앞에 표시된 일정을 치뤄내던 OB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갑니다.
그 해 후반기 연패는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연패만 두 번 있었나 그랬었고...
대신 연승은 많이 기록했죠. 5연승도 있었고.. 7연승도 있었고...
덕분에 OB는 무섭게 치고 올라갔고...
시즌 막판.. 결국 OB는 3위 LG마저 1게임차로 제치고 3위 자리를 차지하죠.
그 중심에는 무서운 신인 김경원선수가 있었구요.
그렇게 해서 최초의 잠실시리즈... OB와 LG의 3판 2선승 준PO가 치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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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가을 제가 속해있던 고3 교실은 야구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전체적인 숫자는 OB팬들이 훨씬 많았지만...
(제일 처음에 말했듯이.. 제 또래들이 프로야구 첫경험을 했던 1982년에 OB와 박철순이 워낙 잘해서 OB팬들이 많았다는...
반대로 저보다 3~4살 이상 어린 또래들 보면 LG팬들이 압도적... 아마도 비슷한 이유겠죠.)
기나긴 암흑기를 거치며.. 상당수의 친구들은 무늬만 OB팬인 상태가 되어버렸고...
(야구를 좋아하진 않는데... '너 어느팀 좋아함?' 물으면 '(잠시 생각) 으음.. OB'라고 대답하는 류의...'
기운차게 활개치던 친구들의 숫자는 OB와 LG가 비슷했죠.
준PO가 치뤄지던 10월초순은 중간고사가 막 시작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난리도 아니었고...
덕분에 저는 준PO 기간 내내 'ㅋㅋㅋㅋㅋㅋㅋ 김민호' 소리에 시달리며 등교를 해야했죠.
1993년 준PO...
유지훤때도 그랬고... 언제나 골칫거리였던 OB의 유격수 자리는 신고선수였던 김민호선수가 주어진 기회를 꽤차고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시즌중에는 잘했었던 김민호선수는 생전 처음 겪는 큰 게임에서 긴장을 했는지..
3경기 모두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고 말았고...
그게 빌미가 되어 OB는 준PO를 LG에게 내어주고 말았죠.
덕분에 LG팬들에게 김민호때문에 엄청 시달렸던...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LG와 삼성과의 PO에서 윤찬만세사건이 터져주며...
우리반의 OB팬들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찬'으로 맞받아칠 수 있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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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고딩시절을 마치고... 졸업식을 하던 1994년 2월의 하는날...
2학년때 같은반이었고 2학기 내내 제 옆에 앉아있었던 LG 골수팬 친구가 저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하더군요.
'일주매야.. 사실 난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충격적인 고해성사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유명한 LG골수팬인 그 녀석이 사실은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그 녀석의 고해성사는 이어집니다.
'그런데... 2학년 2학기때.. 한 학기 내내 니가 내 옆에 앉아서 OB는 잘하지도 못하는 팀인데.. 하도 OB OB 그러는거에 욱해서.. 난 LG팬이 되었다. 그리고 니가 OB OB 할 수록 나는 점점 더 강한 LG팬이 되어갔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헐.. 이럴수가...
그 녀석의 고해성사는 계속 이어집니다.
'사실 난 고향이 목포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려고 중학교때 서울로 혼자 유학왔다. 그런데 너 때문에 해태가 아닌 LG팬이 되었다. ㅋㅋㅋ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한다. 난 이제 대학을 다니기 위해 고향으로 다시 내려간다. 건강해라. OB도 화이팅이다.'
목포로 내려간 그 녀석.
지금도 LG응원하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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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아시다시피 OB와 LG가 시즌 마지막날까지 1위 싸움을 벌였던 해였죠.
그때도 1993년처럼 8월말에 OB는 LG에 거의 5게임 가까이 뒤진 2위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때도 1993년처럼 시즌 막판 무섭게 치고 올라가 결국 순위를 뒤집고 KS 직행 티켓을 따냈던...
그랬기에 9월 OB와 LG의 경기가 펼쳐지는 잠실야구장은 화수목 평일 3연전도 당연히 3만500석의 다 팔려버릴만큼 뜨거운 열기속에 있었죠.
저도 3연전 내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뜨거웠던 3연전의 첫날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LG선수가 친 파울볼이 OB팬들이 자리잡고 있던 관중석으로 떨어집니다.
한 OB팬이 그 파울볼을 잡았고... 파울볼을 잡은 그 OB팬은 LG선수가 쳐 준 파울공은 가지지 않겠다며 분노에 찬 쓰로우로 공을 그물 넘어 경기장으로 던져버립니다. OB팬들은 환호했고...
그 뒤 OB팬, LG팬 모두 상대방 선수가 쳐 준 파울볼은 걍 경기장안으로 투척해버리는...
만약 안던지는 팬이 있으면 지금 롯데에서 '아주라'를 외치는 것처럼 '버려라'를 연호했던....
여튼 이런 행동은 볼을 경기장안으로 던질때마다 경기가 중단되는 부작용을 초래했기에...
양팀 응원단들의 만류로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던...
OB와 LG가 맞붙었던 뜨거웠던 1995년의 야구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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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이 쓰다보니 괜히 글이 길어졌네요.
1998년 2000년 얘기는 생략하고... ^^;
사실 무슨 이유에서인지 1998년과 2000년 LG와 맞붙었던 가을잔치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네요.
역시 사람에게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인이 된 이후의 기억보다는 머리가 다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
여튼 이런 시절을 겪다보니... LG란 팀은 저에게 있어서 어찌보면 좀 특별한 팀으로 남아 있네요.
또 고3시절... 김민호 윤찬 으르렁 거리며 싸우던 LG팬 그 친구는 아직도 저의 제일 친한 친구중 하나가 되어..
내일 같이 손잡고 잠실야구장으로 향합니다.
니퍼트가 등판하며 5차전을 승리로 이끌던 날...
이곳 게시판에...
PO에서 LG에게 밟히고 LG의 KS 진출의 제물이 되느니 차라리 준PO에서 광탈하는게 낫다는 글을 쓰기도 했고...
준PO에서는 PO도 생각하며 경기를 치뤄야 한다고 주장했던 저이지만...
LG와의 PO에서는 KS 생각따위는 집어치우고 걍 PO에서 모든걸 하얗게 불태울 각오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모순적인... ^^;
여튼 그러한 두산과 LG와의 시리즈가 오늘부터 펼쳐지내요.
당연한 것이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한 LG가 당연한 어드벤테이지를 가지고 임하는 시리즈이기에...
두산이 LG를 꺾을 확률은 높지 않다는 생각이지만...
그것은 머리가 하는 생각이고...
가슴은 절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죠.
그 어느때보다 강한 정신력과 투쟁심을 가지고...
한일전을 치루듯, 연고전을 치루듯... 힘차게 싸워 베어스의 승리를 쟁취해주길 온몸으로 응원합니다.
이제 3시간도 남지 않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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