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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롯데의 계약금 미지급으로 현역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최동원은 1981년 8월 토론토의 입단 제안을 받고 귀가 솔깃해진다. 그래도 여느 때 같았으면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그러나 마침 최동원은 한 가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 씨가 수집한 정보였다.

정보는 ‘만약 정부가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 스포츠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준다’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론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3위 이내에 입상하면 현역 입대를 면제하고, 보충역으로 편입시켜준다’는 내용이었다. 정보 자체는 신빙성이 있었다.

1981년 정부는 서울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어찌나 유치에 매달렸는지 정부 기관은 ‘전시 체제’를 능가하는 ‘올림픽 체제’로 가동됐다. 당연히 올림픽이 화두가 되면서 체육계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호의도 점차 늘었다. ‘1988 올림픽 유치지 결정’은 그해 10월 1일 발표가 예정돼 있었는데, 체육계는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 씨는 ‘만약 서울이 올림픽 유치지로 결정되면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혜택이 실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나 때가 때인지라, 아들이 국외리그에 진출해 국위선양을 하겠다고 나서면 정부가 차범근 때처럼 비협조로 일관하기보단 적극 도와주리라 예상했다.

최동원의 동생 최수원 KBO 심판은 “아버지께서 형의 미국 진출을 추진한 배경엔 ‘가면 좋고, 못 가도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이 숨어있었을 것”이라며 “토론토와의 계약 소식이 논란이 됐을 때 ‘행여 여론이나 정치권의 도움으로 아들의 병역 문제를 풀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동원과 토론토 계약(1981년 9월 15일) 소식이 외신을 통해 국내로 전해지자 최 씨는 여론과 정치권의 도움을 구할 새도 없이 일주일(23일) 만에 토론토와의 계약을 ‘가계약’이라고 주장하며 계약 무효를 주장한다. 어째서 최 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었을까. 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멤버들. 사진 왼쪽 위부터 박노준, 김봉근, 최동원. 사진 아래는 고 김정수

최동원과 토론토 계약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뒤 최 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다음은 최동원의 생전 증언이다.

“23일 외신을 통해 내 계약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토론토와의 계약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설명하며 ‘많이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통화를 하는 아버지 표정이 무척 심각했다. 전화를 끊으셨을 때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모처(某處)’라고만 답하셨다. 아버지깨서 ‘모처’에서 걸려온 전화 내용을 들려주셨는데  내용인즉슨, 만약 토론토와의 계약이 사실일 경우 내 신분이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며, 조만간 있을지 모르는 병역혜택 대상자에서 제외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병역미필자로 남아 메이저리그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실업야구에도 뛸 수 없는 ‘야구계의 영구 미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처’ 사람은 아버지께 ‘우리 조언을 듣고 자중하는 게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만약 최동원이 메이저리그 계약을 뒤로 미루고, 내년(1982년)에 열리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가 한국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어준다면 우리가 무슨 수를 써서든 최동원의 메이저리그행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버지께서 ‘일단 토론토와의 계약을 부정하고, 병역혜택 대상자가 된 이후 다시 미국행을 추진하자’고 하시기에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모처’의 발언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추진 중이던 스포츠 선수의 병역 혜택에서 프로 선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정부가 스포츠 선수의 병역 혜택을 추진한 건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남자 아마추어 선수들이 병역 부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최동원과 토론토의 계약이 사실로 굳어진다면 최동원은 그 순간 프로 선수가 돼 아마추어 선수 자격을 상실하고, 국제대회 출전도 금지될 게 자명했다. 그렇다면 정부 입장에선 국제대회에 나가지도 못하는 최동원에게 굳이 병역 혜택을 줄 이유가 없었다.

전 이 기사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순도 100%는 아니더라도 설왕설래였던 지난 얘기들보다는 매우 신빙성 있네요.  토론토가 사기친 것도 아니고.   최윤식옹이 억지를 폈던것도...   요즘 생각해보면 둘다 말이 안되죠. 

그나저나 깨알같은 롯데...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다시 만난 건 1981년 실업 롯데(롯데제과 야구단)에 입단할 때였다. 연세대 졸업을 앞둔 최동원은 많은 실업팀으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그 가운데 롯데도 있었다. 롯데는 최동원 측에 “다른 팀보다 많은 계약금을 챙겨주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계약금 5천만 원에 입단 합의를 봤다.

그러나 롯데는 무슨 영문인지 2천100만 원을 현금으로 내주고서 나머지 2천900만 원은 6개월 약속어음으로 끊어줬다. 최동원 측이 반발하자 롯데는 “우릴 못 믿어서 그러느냐”며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언론엔 3천만 원에 계약한 것처럼 알리자”고 제안했다.

최동원은 롯데의 요구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롯데처럼 큰 회사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게 안심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롯데는 차일피일 지급을 미루다 결국 남은 2천900만 원을 6개월이 지나서도 주지 않았다.

생전 최동원은 “롯데는 그때부터 나와 맺은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약속어음을 떼먹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 최 씨는 이 일의 책임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구단 관계자들은 죄다 발뺌만 할 뿐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롯데 관계자는 최 씨에게 “계약금을 반으로 깎아줄 수 없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최동원이 이에 응하지 않자 야구인들을 만날 때마다 “최동원 부자는 돈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들”이란 악담을 늘어놨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워야 했던 최동원은 이 사건으로 크게 상심한다. ‘앞으로 계속 한국 실업팀에서 뛰어봤자 남는 건 후회와 분노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던 그해 8월. 최동원에게 한국을 떠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다. 캐나다에서 열린 대륙간컵대회에서 호투를 펼치자 메이저리그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입단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