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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순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중이다. 7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규순 전 심판위원의 금품수수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를 강력부에 배당했다.

 

문체부는 “KBO가 이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검찰에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체육계 ‘적폐 청산’에 나선 정부가 이 사건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는지 잘 드러난다. 

 

야구팬들도 분개하긴 마찬가지다. 엠스플뉴스엔 하루에도 200통이 넘는 이메일이 온다. ‘각종 프로야구 사건, 사고에 대해 ‘철저한 조사’보단 ‘축소와 은폐’로만 일관하는 KBO를 성토‘하며 ‘사건의 실체를 명명백백 밝혀 프로야구가 진정한 국민 스포츠로 거듭나도록 언론이 앞장서 노력해달라’는 내용 일색이다.

 

감독, 코치, 선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프로야구 감독, 코치, 선수들은 엠스플뉴스가 제기한 KBO 심판들의 각종 갑질, 판정 보복, 지나친 권위의식 등과 관련해 “그간 목소릴 내고 싶어도 혹여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쉬쉬’했다”며 “이참에 심판진에 대한 대대적 개혁과 역량 향상에 모든 야구계가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최규순 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야구계의 시각은  다르다. 6일 오전, 마해영 전 야구해설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심판과 구단 대표이사 사이의 돈거래를 “곤경에 처한 심판을 구단 대표이사가 도와준 것”으로 정의했다.

 

마 전 위원은 “기간 자체가 큰 경기를 앞두고 있는 시기니까 오해의 소지는 있다”면서도 “말 그대로 심판을 매수하려면 그 정도의 돈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자신만의 논리를 펼쳤다.

 

“매수를 하려면 왜 노출이 되도록 보냈겠어요. 말 그대로 ‘언더 더 테이블’로 주든지, 말 그대로 말썽의 소지가 안 나오게 하지, 그 부분은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해 있으니까, 매일 보던 사이고 하니까 내가 도와줄게, 그런 의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진행자: 액수도 좀 너무 작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마 전 위원의 발언이다.

 

마 전 위원의 말대로라면 문체부의 검찰 고발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려던 구단 선의’에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는 뜻이 된다.

 

플레이오프 1차전 구심과 플레이오프 진출팀 대표이사간에 돈이 오갔는데 그걸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려던 구단의 선의’로 표현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특히나 도박에 중독돼 여러 구단에 ‘교통사고가 났다.’ ‘술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져 합의금이 필요하다’ 심지어는 ‘부모님 교통사고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말로 많은 구단에 300만 원을 요구한 최규순을 ‘곤경에 처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300만 원을 ‘매수로 보기엔 부족한 작은 액수’로 평가하는 마 전 위원의 ‘통큰 계산법’이야말로 할 말을 잃게 한다.

 

마 전 위원에겐 현직 심판이 구단 사장을 상대로 플레이오프 전날 돈을 받은 충격적 사건도 그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일 뿐이었을 것이다. 심판과 구단이 규정을 위반하고, KBO가 이를 숨긴 사건의 심각성도 크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터다. 

 

레전드 출신의 한 야구인은 “마 전 위원의 발언이야말로 야구인들 사이에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선수협을 만든 걸 자랑으로 삼는 마 전 위원의 의식이 이 정도인데 다른 야구인은 오죽하겠느냐”고 혀를 찼다.

 

문제는 마 전 위원처럼 ‘나이브한’ 생각을 가진 야구인이 한둘이 아니란 점이다. 최근 엠스플뉴스가 ‘최규순 사건’을 집중 보도하자, 한 야구인은 본지 기자에게 ‘살살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야구인은 “이미 조용해진 일인데, 왜 지난 과거 일을 들추냐. 다들 야구로 먹고 사는 처지 아니냐.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야구 선후배 사이다”라며 “살살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최규순이 두산 대표이사에게 돈을 받은 건 2013년 10월 15일로, 지금으로부터 불과 3년 9개월 전의 일이다. 여기다 KBO 심판들의 각종 갑질은 최근까지도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까 ‘옛날 일’보단 ‘엊그제 일’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런 반응은 점잖은 편에 속한다. ‘최규순 사건’ 보도를 시작한 뒤, 엠스플뉴스 기자들에겐 온갖 이들에게서 하루 수십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쯤 했으면 됐으니까 그만 하라”는 충고서부터, “한국 야구를 망하게 할 셈이냐”는 원망까지 반응도 다양하다. 평소 야구계 정의를 부르짖던 한 인사는 “다른 곳은 조용한데 왜 당신들만 난리냐”며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 이렇게 하다간 야구 인프라 확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압박했다. 

 

엠스플뉴스로선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승부조작 사건을 다룰 땐 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해설위원으로부터 조롱까지 당했다. 내용은 이랬다.

 

지난해 7월 엠스플뉴스가 승부조작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룰 때다. 엠스플뉴스 취재진은 우연히 어느 구장에서 이 해설위원을 봤다. 이 해설위원은 많은 취재진이 모인 자리에서 “지네가 경찰이야? 뭐야?”하고 엠스플뉴스를 비아냥댔다. 당시 엠스플뉴스 기자는 이 해설위원의 바로 옆에서 조롱성 발언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놀라운 건, 승부조작으로 걸린 한 선수가 과거 자신의 승부조작 사실을 '동료'였던 이 해설위원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단 점이다.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이 해설위원은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덮는 쪽을 택했다. 승부조작 보도에 대한 조롱은, 아마도 ‘도둑이 제 발 저린’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는 세력은 지난해나 올해도 똑같다. 한 야구계 실력자는 “천만 관중을 향해가는 프로야구 흥행을 방해할 셈이냐”며 “계속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어떤 야구인은 “그냥 놔둘 것 같으냐. 다시는 야구계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으르렁댔다. 

 

본인들은 ‘좋은 뜻’에서 한 행동일지 모른다. 비난에 시달리는 후배 심판들이 불쌍해서, 개인적으로 친한 야구인이 딱해서 ‘살살하라’고 한 마디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틀렸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고방식이, 명백한 불법도 못 본척 넘어가는 동업자 의식이 한국 야구를 뼛속까지 병들게 했다. 야구를 망가뜨렸다. 

 

"야구를 망하게 할 셈이냐"는 비난도 마찬가지다. 제 딴에는 KBO리그 흥행과 야구 인기를 걱정해서 '한 소리'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틀렸다. ‘최규순 사건’ 같은 문제를 끝까지 취재해 파헤치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그것을 많은 촛불을 보고 경험한 바 있다.

 

1차 승부조작 사태를 대충 덮고 넘어간 결과는 2차 승부조작 사태로 돌아왔다. 이제는 3차 승부조작 사태가 터질 판이다. 흥행에 방해될 만한 사건은 일단 감추고 보는 KBO의 ‘은폐 본능’이 야구계를 지금 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문제를 근원부터 뿌리뽑아야 야구계를 바로잡고 건강한 리그를 만들 수 있다. 심판 금전거래, 입찰비리, 승부조작 문제를 감추고 달성한 800만 관중, 1천만 관중은 ‘회칠한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최규순의 도박과 금전거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구계에 소문이 파다했던 일이다. 부당한 요구를 받은 이들이 제때 신고하고 외부에 알렸다면, 그런 신고 문화를 KBO가 조성했다면, 조기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이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다면, 지금처럼 감당 못할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계의 자정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가 최규순의 문제를 알면서도, 쉬쉬하고 조용히 덮는 쪽을 택했다. 

 

많은 스포츠 언론이 감시와 비판 기능을 수행해도 그 기사는 까닭없이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왜 사라졌는지는 그걸 사라지게 한 이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엠스플뉴스는 이번에만 최규순 문제와 KBO의 각종 의혹, 야구계의 갑질을 다룬 게 아니었다. 지난해 8월 첫 보도를 내놓은 뒤, 10개월이 넘도록 줄기차게 목소릴 냈다. 이는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라 본다. 그러나 정작 최규순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야구와는 무관한 정치·시사 전문 매체인 ‘프레시안’을 통해서였다. 

 

우리 야구계가 먼저 해야할 건 심판-구단간의 돈거래를 ‘선의’로 포장하는 ‘우리가 남이가?’ 카르텔을 정리하고, 철저한 반성과 함께 야구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진행하는 것이다. 엠스플뉴스는 조금 더 먼저 반성했을 뿐이다. 엠스플뉴스는 몇몇 야구인과의 의리 대신 ‘정의로운 야구’를 바라는 이들과의 ‘공정 보도’ 약속에 더 충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