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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습작.] 손님.

작성일
10-02-10 07:22
글쓴이
퍼스나콘 울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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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느닷없는 방문이 없었다면 적어도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가 누려 온 일반적인 명절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명절 연휴를 전후해서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게 된 것이 벌써 횟수로 몇 년째이니까. 남들이 차에서 몇 시간씩 허비하며 혹은 명절 증후군으로 가족 간의 불협화음으로 앓고 있을 때 우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것으로 보낼 수 있었다. 적어도 여태까지는. 다행히 다국적 회사에 다니는 나도 휴가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맞벌이를 하는 아내도 명절만큼은 시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명절이 호기였다.


이번 연휴는 기간이 길어서 명절 다음 날 태평양의 섬 괌으로 휴가를 가기로 했다. 딱히 올 사람도 없고 가야할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일찍 돌아가셨고, 처가댁은 너무 멀어서 명절 고생을 해가면서 굳이 방문할 까닭이 없었기에. 물론 따지자면 아직도 우리 쪽으로 숙부님 내외와 고령의 큰어머님이 살아 계시지만. 그 분들을 뵙겠다고 명절날의 교통체증을 감수하면서 하루 종일 걸리는 고향을 가기도 마땅찮은 노릇이라 자연히 우리의 명절은 몹시 한가했다. 아니 굳이 한가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하겠다.



어제 저녁부터 연휴 기분에 들어간 아이들은 늦도록 게임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우리도 모처럼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TV속 '명화의 극장'  에 몰입해 있었다. 그 흔적들이 거실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다. 마시고 남은 맥주병과 안주 일부가 거실 한켠에서 자리하고 있고, 아이들은 늦잠을 잤으며 우리 부부도 느긋하게 점심 무렵까지 뒹굴며 이런저런 여행 스케쥴을 짜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이번 설에는 음식을 맞출까, 한번 해 볼까,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괌 PIC CLUB 백배 즐기기 따위의 사이트를 방문하는데 하루 일과의 반을 소일하고 있었다. TV 뉴스에서는 이번 설 연휴에도 귀성객 차량 정체로 인하여 서울에서 부산까지 11시간이 걸린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면 아마도 13시간쯤 걸리겠지. 우리는 꽉 막힌 귀성 차량 행렬 속에서 컵 라면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지난 번 스키장에서 눈 때문에 12시간씩 걸려 횡성에서 서울로 온 길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오후 들어서 이번에는 직접 몇 가지를 만들어 보자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우리 부부는 같이 시장을 보기로 했다. 아내는 예의 팔짱부터 꼈다. 아내는 이렇게 내게 밀착하는 것을 좋아한다. 보기에 따라선 애정 표현의 스킨쉽이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여유를 만끽하게 해 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부들과는 다른 명절이 그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가를 생각해 보면, 명절이나 집안 등등에 사실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천하에 막 되먹은 불효막심한 놈은 아니다. 적어도 현실이 그렇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겐 먼 일가친척들보다는 가까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물은 우리 같은 이들을 위하여 소량으로 모둠을 해서 파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나물과 전을 사고, 떡을 비롯한 몇 가지 명절 차례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직접 장을 보러 나와서 그런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 눈치다. 아내는 갔던 곳을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눈에 띄는 것 중심으로 장을 봤다. 장을 보는 가격이나 주문 상차림이나 사실 가격 면에서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직접 차리면 정성이 깃들어 조상님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인 듯하다. 나야말로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기만 하면 된다.


집으로 돌아 온 시각은 오후 5시가 넘어있었다. 백화점을 두어 바퀴 돈다고 한 것이 3시간 가까이 지체했었나보다. 게다가 괌에서 입을 수영복을 새로 사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을 쫓아 수영복 코너와 기타 선크림이라든지 하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사느라고 훨씬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 실제로 차릴 제사상차림 보다는 괌으로 들고 갈 간식의 비중도 컸다. 지난 번 유럽 여행 때는 달랑 맨몸으로 가서 고생을 했다고 느꼈는지 아내가 간식에 집착을 해서 몇 가지를 사다보니 그것의 부피도 만만찮았다.



아내가 외출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쇼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나는 내 서재로 들어와 습관처럼 컴퓨터를 켰다. 어젯밤에 보낸 업무 메일에 관한 답이 왔는지 모를 일이기도 하고 또 며칠 간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미리 정리해 둬야할 일들도 있었다. 메일을 열자 그녀의 메일도 들어와 있었다. 별로 나와 특별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메일상으로 내게 온갖 얘길 털어놓고는 했다. 처녀인데 엄마한테 잡혀서 명절날 전을 부치는 심정을 하소연하다가, 혹은 그녀가 기획했던 공연에 관한 투정을 부리곤 했다. 나는 그저 메일로 그녀를 달래주거나 가끔 만나서 밥을 먹는 정도 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 것 같다.      




그때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보세요?”


“저...저..거기가 김우영 씨 댁이 맞습니까...? 김우영 씨요..”



어색하고 불편한 기가 역력한, 떨림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서부 경상도의 억양이 강하게 느껴졌다. 누구일까? 집안 사람?



“행님....저...김무영입니더...김무영예...”



떠듬거리며 자신의 이름까지 한달음에 밝히고 나서, 나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네가 웬일이냐....?”



내 목소리는 아마도 많이 낮아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가 더욱 불편해졌을 수도 있고.



“전화번호는 어찌 알았니...?”


“예....지난 번에....고향에... 어무이가 고향에 가셨다가....들었습니더...”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갑자기 속이 더부록한 것처럼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차가워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행님요...실은 지금 어무이하고...서울에 가는 길입니다...”


“서울....? 서울엔 왜?”


“가서 말씀 드리겠십니더...어무이가 인자는 행님 댁에 가봐야 한다캐서...”



어이없거나 황당한 일을 당하면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이 있다마는, 나야말로 뭐라고 대꾸해야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오고 있다니 오는 걸 도로 가라고 할 수는 없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담배를 하나 빼서 물었다. 나도 피치 못하게 회사에서 하는 금연 운동에 동참하느라도 담배를 집에서만 피우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남겨 둔 담배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아내가 들어왔다. 내가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자, 눈을 흘기며 웃음을 짓는다. 아직도 못 끊고 있냐는 애교 섞인 투정일 게다. 늘 이런 식을 아내는 내가 하는 일데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우호적이라고...? 아니 긍정적으로 봐준다는 표현이 옳겠다. 사실 이미 여자로서의 매력이나 느낌을 상실한 아내를 한결 같이 대할 수 있는 내 태도 또한 그녀의 이런 배려 덕분인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전화냐고 아내가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온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능했다. 엄마가 방앗간을 하면서 벌어 놓은 돈들은 아버지의 노름과 술로 탕진되기 일쑤였고, 늘 엄마에게 아버지는 짐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를 하늘 같이 받들었다. 나도 남자지만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고, 이울러 수재 소리를 들으면서 학교를 다닌 내게 참고서 한 권 변변히 구입해 주지 않는 아버지의 무능에 대해 단 한 번도 대항해 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일을 하시다가 쓰러지신 후, 그동안 집안의 모든 경제활동이 엄마에게 집중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후의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1년 가까이는 그나마 남아있던 돈으로 도박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간간히 엄마를 돌보던 아버지가 남아있던 돈과 일부 빚까지 얻어서 딴 살림을 차린 것과 엄마와 내가 길거리에 나 앉은 것은 동시에 일어 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과히 젊지도 예쁘지도 않는 여자 하나를 데리고 와서 옷가지를 보란듯이 싸가던 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는 그저 웃음만 실실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여자를 살해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우고 그 여자에게로 돌진했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때렸다. 그리고 보란듯이 그 여자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것이 청소년기를 지나 그리고 청년까지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제일 난감한 것은 살아있는 아버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의 아내는 그것을 다 이해해주긴 했지만, 이해를 받고 안 받고는 떠나서 아버지는 아무리해도 내가 극복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서 시골 큰 어머니를 통해서 온 연락은, 입고 갈 변변한 양복이 없다는 것과 차비를 꾸러 왔더란 것이었다. 절망이라기보다는 끊을 수 없는 악업이 우리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머릿 속은 마구 헝클어졌다. 게다가 그 이후로 조금씩이나마 정신이 돌아 온 엄마는 내가 결혼한다는 사실보다 아버지를 만난다는 그 사실에 더욱 열뜬 환자처럼 들떠 있었다. 그 모든 상황들은 내가 어떻게 홀로 장학금만으로 공부하여 이나마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주는 단적인 예들이다. 내게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시한폭탄이었으며 지겹다는 생각조차 사치였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아버지는 아쉬워질 때쯤이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어 엄마를 찾아왔다. 그러면 온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한 엄마는 숨겨두었던 돈들을 아버지에게 건네주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엄마와 부부로서의 연을 맺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반신반의하면서 준비해 둔 돈은 아버지의 수중에서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죽을 때까지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나도,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때론 인간에게 절망보다 더 깊은 나락은 단절이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와 처음부터 끝까지 단절하고 싶었다.



엄마의 장례식 날에도 아버지는 태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가장 분주한 사람도 아버지였고 가장 지겨워하는 사람도 아버지였다. 장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차비를 챙겨들고 다시 그 여자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여자로부터 걸려 온 전화는 이제 자신이 엄마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대경실색한 아내는 밤새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아니 나를 원망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옳겠다. 그렇게 속상해하는 아내보다도 아버지와 그 여자의 뻔뻔함을 절대로 더 이상 용서하지 않겠다는, 이제 엄마라는 끈이 끊어졌으니 혈연과의 인연도 모두 끝이라는 생각으로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짐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 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철저하게 연락을 끊고 살고 싶었던 내 뜻도 있었겠지만, 아버지도 어느 날인가부터 홀연히 연락을 끊었다. 그동안은 우리 가족들에게 평화와 안정이 찾아왔다. 엄마의 죽음은 아내를 자유롭게 해주었고,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경제적인 여건도 나아져서 내가 성장기에 지녔던 불우함에 대한 어두운 기억들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가족이 함께 하는 문화활동이나 스포츠에도 열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 가족에게로 아버지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의 영세민 아파트를 방문했을 무렵, 그는 탈진한 상태로 이미 혼자서 거동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내 앞에서,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참담하고 분노했으며 나 자신과 아버지를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으로 입원시켰을 때는 이미 폐병 3기였다. 폐병이 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삶의 의욕을 상실한 아버지는 급격하게 병세가 악화되어서 합병증까지 왔다. 그 날 새벽,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병실을 지킨 지 며칠도 채 안되던 날 새벽에 아버지는 침대 옆에서 잠이 들었던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

 

아버지를 산소에 묻던 날, 나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친척들 가운데 누구도 우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아내가 홀로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냥 장례식이니까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 일들을 치르는 동안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그 여자가 헤어진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6개월쯤 전이라도 했다. 자신의 아들에게 호적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는 그 여자는, 나중에 나한테 오히려 큰 소리쳤었다. 너네 아버지가 내 아들 호적 만들어 준 댓가로 나는 20년 가까이 아버지를 먹여 살렸노라고...그러니 네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리석은 아버지는 삶의 어느 부분을 그렇게 일용할 양식과 바꾸어 버렸는지,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는지 그 여자와 함께 산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 여자가 아들을 군대 보낸 후 집을 나가버렸고 그것을 빌미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아버지는 홀로 6개월을 살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기 전에야 내게로 왔다.



그것을 아내는 아버지가 나와 화해할 시간을 갖기 위하여 찾아 온 것이라고 편하게 해석했다. 그리고 그 새벽의 임종을 지켰으니 내가 할 도리는 다했다는 뜻으로 나를 위로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는, 아니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옳은 지도 모르겠다. 나는 청소년 시절 이후로 아버지를 잊었고, 그는 가끔 손님처럼 찾아와 나를 불편하게 하고는 자기 편한 시간에 떠나버리면 그만이었다. 내 삶 혹은 아들로서의 나는 그의 삶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산소에 묻던 날 그 모든 것을 함께 묻고 싶었고, 다시 내 인생에 그런 구질구질한 인연들이 찾아 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 바람대로 모든 것은 그대로 산소에 묻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 모자가 서올, 내 집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다.



내 얘길 다 듣고 난 후 아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나에게 물었지만, 그건 도리어 내가 아내에게 되묻고 싶은 말이었다. 차라리 피하고 싶었다. 아내가 매몰차게 그들을 내 쫓거나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해서라도 도로 내치고 싶은데, 나도 실은 얼마나 막막한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내는 나가더니 서둘러 집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이다.



벨 소리에 내가 나가서 문들 열었다. 현관에서 마주 친 그들 모자의 몰골은 내 추억 속의 그대로였다. 누가 볼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는지 아내가 서둘러 들어오시라고 권했다. 누추하고 구질한 추억의 잡념들이 일시에 살아났다. 너도 여태는 이런 놈이었는데 어쩌다가 돈을 좀 벌었다고 지난 과거까지 다 덮어지는 줄 아느냐, 라고 나를 비난이라도 하듯 그들은 당당하게 허접한 꾸러미 보따리를 안고 들어섰다. 집안을 휘휘 둘러보는 그 여자의 뻔뻔스러움이 역겨워 당장이라도 나가라고 소리를 치고 싶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비참한 기분이 울컥 솟아올랐다.



명절을 쇠러왔노란 태연한 표정에서 지난 30여 년 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아내가 허겁지겁 만든 음식 몇 가지를 내 오자, 음식의 간이 맞네마네 하는 따위의 말로 시어머니 행세를 하려 들었고 아내의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 30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무슨 악연으로 또 나를 찾아왔는지 나는 번연히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세월을 이길 수 없었는지 그녀의 머리는 촌스러운 검정 염색이 역력하였고, 이마의 굵은 주름살과 입가의 깊은 골, 그리고 눈가 잔주름과 거무튀튀한 피부까지 영락없는 시골 촌부의 모습인데다 화장을 덕지덕지 발라서 역겨웁기까지 했다. 손톱 끝에는 벗겨진 매니큐어 칠이 남아있었고 삶의 이력을 느끼게 할 만큼 거칠어 보였다. 그의 아들은 어떤가. 명색이 호적상에 내 동생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는 그 녀석도 차라리 입지 않았으면 좋았을 허름한 양복에 빈티가 나는 남루한 행색과 몰골 때문에 나는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물론 당장이라도 이들을 내치면 그만이지만, 아직 내 놓고 그리할 건 없고 적절한 명분을 내세워 체면을 구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결을 하고 싶었다.



그  여자는 고추장과 된장 꾸러미를 풀었다. 명색이 시어머니가 아들집을 찾아오는데 맨손으로 올 수야 없었노라고 하면서 태연하게 그것들을 아내 앞으로 내밀었다.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를 바라보는데 황당함이 역력하게 느껴진다. 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딴에는 우리를 생각해서 가지고 온 음식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고 얘기도 듣기 전에 그들을 내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아이들에게는 눈치가 보이는지 할머니라고 스스로 우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내 집에서 내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들이 자고 간다고 했을 때 아내는 거의 경악했다. 나도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긴 어디서 잔다고 그러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좀 더 명확하게 의도를 파악한 이후에 내 보내거나 아니면 일단은 하루 재워서 보내되 다음부터는 못 오게 하리란 심사가 더 깊이 깔렸다. 지난 30년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이미 그건 과거인데 과거를 현재와 혼돈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루만 자고 가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서울에 살고 있다는 그 여자의 동생 집으로 간다고 했다. 아들 녀석은 체면은 남았는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형님 소리를 해 댔다. 그리고 그 여자의 행동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완충역할을 하기도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저녁 식사가 끝나자 그 여자와 녀석은 이제 잠자리를 요구하는 듯이 거실 한 복판에 앉아서 하품을 해 대었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어디 있을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따라다니며 수렁에 빠뜨리고 싶은 것일까. 그 여자와 녀석을 볼수록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이건 아버지가 10년 전에 원하던 상황이건 아니건 현재가 되어 버렸다. 누구나 인생이나 상황이 자신의 희망과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도 또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저녁 내내 아내에게 트집 아닌 트집을 잡던 그 여자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아내는 일찌감치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냉랭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내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에게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는 그동안 내가 해준 게 있는데 나의 아픈 과거를 단 하루도 참지 못하고 꼭 이렇게 해야되겠느냐고 소리부터 치고 싶었다. 아니다, 그게 아니고 그 소리는 내가 내게 치고 싶은 말이었다. 하루 정도는 어찌 참을 수 있지 않느냐, 지나가던 길손이 찾아와도 그리 할진대, 그래도 아버지라는 작자와 20년 가까이 살던 사람인데, 하루 정도는 객지에서 재워줘도 되지 않느냐. 아! 아버지, 당신은 기어코 돌아가신 후에라도 이렇게 또 다른 손님으로 찾아 드시는 겁니까. 나는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아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내 서재로 이부자리를 봐주라고 하자 아내는 싸늘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경멸하는 듯한 그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내 입가에도 조소가 흘러나온 것은.



“그래, 나 같은 놈 만나서 이 고생하는 게 지겹지?”



“당신은 늘 그런 식이야. 조금만 회피하고 싶으면 나를 탓해. 기분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왜 인정 안 해주려고 해? 그리고 적당히 얘기하고 보내면 될 것을, 왜 가만히 있으면서 나만 조소해?”



“그만하지. 나중에 얘기해. 이불이나 내놔.”



내가 입이 열 개라도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마는 그렇다고 해도 아내 입장에서 시부모를 오래 모신 것도 아니고, 내가 평소에 그처럼 자기만을 생각하며 생활하는데 어째서 나의 이런 슬프고 초라한 과거를 꼭 경멸해야 하는지...나는 가끔 아내의 그런 면이 나를 거리로 내몬다고 생각했다. 내가 문화 기획 일을 하는 K를 만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그녀는 무엇이건 마음 속에 넣어두는 법이 없었고, 내게 어떤 요구나 경멸을 퍼부은 적도 없었다. 깔끔하고 예의바른 아내와는 다르게 늘 덜렁거리고 때로는 무모한 요구도 하지만, 그 무대뽀 스타일이 나를 그녀와 헤어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걸 안다. 이럴 때 오히려 아내가 나를 위로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사실 이들의 출현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아내가 아니고 내가 아닌가? 나일까? 나는 아내에게보다 나 자신이 더욱 싫어졌음이 분명했다.



아내의 고민을 안다. 교양 있고 깔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 여자가 자기가 덮던 이불을 저렇게 남루한 행색의 손님들에게 내어놓기란 실로 쉬운 일은 아니다. 안방에도 거실에도 아로마 향을 수시로 뿌려야하고 특히나 이불이니 옷가지에 예민한 성격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더라도 무조건 꺼림칙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내 삶의 어느 한 부분은 그렇게 꺼림칙하고 누추하고 남루하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다소 냉소적인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잘 짜여진 이 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나도 무수한 지각변동을 겪어야 했을 테고 일부는 제주도의 주상절리처럼 굳어진 채 내 가슴 깊이 묻혀있던 것이다. 그것들은 날카로우며 바둑판처럼 쩍쩍 갈라져서 언제고 내 심장들을 일제히 찔러대는 것을 아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그 여자와 녀석의 방문으로 인해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나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휴화산처럼 속으로 끓어오르던 기억 속의 분노의 파편들이 아내에게로 마구 튀어가 그녀를 덮어버릴 것 같았다.



“이불...달라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당신은 내게 화를 내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럼 저 사람들을 시어머니로 시동생으로 내가 극진히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시어머니는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어.”



내가 화를 내는 건 정작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아내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K라면 아마도 이해했을 것이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므로. 아내는 드디어 건드려서는 안될 뇌관까지 건드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 아내라면, 내가 자라 온 과거의 아픔들 때문에 내가 겪어 왔을 고통을 이해한다면 내게 이러면 안되지 않는가. 아내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해야하는데, 내 아내이기 때문에 나를 결코 이해하면 안 되는 이 상황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지금 이 순간은 아내도 내 삶에 있어 결코 주인이 될 수 없는, 손님의 입장 밖에 견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싶기도 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아내가 장롱 문을 열어서 이불을 꺼냈다. 이불을 들고 안방을 나서는 내 뒤통수는 처참했고 뜨거웠으며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당했다. 나는 아내에게 스트라이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입에 든 혀처럼, 혹은 만년 연인처럼 다정하게 지내 온 우리에게 들이닥친 이 사소한 하루 때문에 그동안 쌓아 온 믿음과 신뢰라고 믿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정말로 서로 사랑했을까? K를 만날 때도 나는 솔직히 이런 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K는 단지 집 밖의 여자였을 뿐이고 아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랑해야 하는 여자로 믿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냉소적인 웃음이 나왔다.



서재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앉아서 머리를 빗어 넘기는 그 여자를 보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60이 다 되어 여자를 잃어버린 나이에도 손거울을 꺼내서 듬성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폼이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와도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을 엮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싫든 곱든 인생이 어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것이던가. 녀석 또한 나이에 비해서는 착하게 자란 듯 싶다.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는 숫기로 내내 제 어미 뒤에 앉아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연신 머리를 수그리는 것을 보니 영 본데없이 자란 것 같지는 않다.



아니...그러고 보니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아버지의 존재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유효했다. 이후 내 삶에서 아버지는 없었고 대신 손님처럼 왔다가는 아버지만 남았을 뿐이다. 내가 청소년기나 나이 들어 내 진로를 선택해야 했을 때, 혹은 내가 인생의 모진 바람 앞에서 풍파에 시달릴 때 단 한번도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 주지 않았다. 대신 저 녀석의 손을 잡아 주고 있었겠지. 내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저 녀석과 저 여자는 내게서 아버지를 앗아갔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이들을 받아들이는 내가 너무 비참해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도 보인다. 녀석은 공손했다. 말 한 마디에도 행동 하나에도. 그리고 나는 중학교 이후부터 내 힘으로 학교를 다녀야했지만, 녀석은 아버지가 고등학교를 마치게 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분노 가운데 하나였다.



일찌감치 그들 모자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별반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아내의 그런 얼음 같은 차가움에 나도 몸서리를 쳤다. 나는 아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렇듯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긴 나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쌓아올린 시간들이 이런 사소한 일로 한꺼번에 무너질 만큼 이해와 깊이가 얇았던가 하는 이기심 때문에 약이 바짝 오른 독사처럼 내 눈도 치켜 올라갔으리라, 스스로 그리 느껴진다.



아침이 되었다. 밤새 뒤척거린 탓인지 두 눈이 뻑뻑했다. 서로 등을 돌리고 잔 것 같아서 팔을 뻗어보니 아내는 벌써 일어나고 없다. 머리가 아프고 목도 말랐다. 어젯밤의 복잡한 상황들이 아침에 다시 재현될 거라고 생각하니 또 속이 답답했다. 이런 기분으로 괌으로 간들 제대로 휴가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두 모자와 아내를 대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나가야겠다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옷 위에 남방을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주방에서 그 여자와 아내가 한 바탕 실랑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글쎄, 그냥 제가 한다니까요...그동안 저희들이 하던 방식으로 할거예요.”


“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더 수월하다 카니까 그라네? 생선을 통째로 튀기는 사람이 어데 있노? 먼저 살짝 쪄서 튀기는기라.”


“여태는 그냥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생선을 찔만한 찜통도 없구요. 그냥 들어가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라모, 나물이랑 탕국은 내가 끓일꾸마, 인도고.”


“.....”

 

아내의 표정에 분노와 짜증과 난감함이 교차한다. 내가 끼어 들어야 할지 모른 체 해야할 지조차도 모르겠지만 나는 모르는 체 방으로 그냥 들어왔다. 아버지는 이렇게 세상을 뜨고도 기어코 손님으로 다시 찾아오시는구나. 아무도 내 맘을 모르리라 싶은 생각에 정초라는 것도 잊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길어도 15년 정도를 아버지로 살아 온 당신은 그 두 배가 되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렇게 불쑥 찾아와 하룻밤을 자듯이 휘저어 놓고 가고, 앞으로도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당신이나 당신의 그림자의 출현으로 인해 내 삶에는 변화가 없으리라는 예감이다. 그것이 당신과 내가 아들과 아버지로 살아 온 방식이었다.



마치 침묵 속에서 전쟁을 치르듯이 차례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두 여자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내와 계속 뭐라고 하는 그 여자의 사이에 선 나는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자꾸 들린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여자가 보기에는 얼마나 불충스러운 차례상일 것인가. 녀석 또한 얼마나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던지 오히려 나나 아내가 객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내는 차례상을 차리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내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부른 손님은 아니라는 걸, 내 삶의 손님이라는 걸 그녀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내 손님이지 않은가...내 아내가 그걸 알아주길 바란다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숙하고 경건한 제의식이 시작되었다. 그 여자는 마치 주술사처럼 연신 중얼거리며 여태까지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근엄한 표정으로 상을 차려나갔고, 녀석은 그 엄마가 시키는 대로 지나친 엄숙함으로 포장된 채 제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 된 것이 확실하다. 갑자기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녀석은 나보다 오래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으니 차례를 지낼 때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태 차례나 제사상을 차리면서 한번도 그런 확신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차라리 K를 만나서 이런 사소한 감정들을 얘기 나누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례상은 다 차려지고, 나는 떠밀리다시피 차례를 지내기 시작했다.



차례상을 치우는 녀석의 모습도 역시나 경건하다. 저 녀석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일까? 젊은 녀석이 애어른 같기도 하고,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단정한 자세로 제 어미에게 절을 하고 극구 사양하는 아내와 내게도 절을 해서 우리는 얼결에 맞절을 하고야 말았다. 아내도 제 어미와는 달리 녀석의 예의 바름에 조금은 마음이 풀렸는지 입가에 슬쩍 미소를 흘리기도 한다. 견디기 힘든 건 그렇게 내내 아내를 주시하는 나의 태도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여자도 차례상을 차릴 때의 까탈스러움은 차례가 끝나자 조금 누그러졌다.    뻔뻔하기로야 30년 전이나 지금이야 다를 바 없지만, 당신도 참 많이 늙었구려, 하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오는 걸 보니 그녀도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이제 어떻게 그 고리를 완전히 끊을까 하는 것이다.



상을 치우고 난 뒤 모자는 우리와 마주 앉았다. 나는 어떻게든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런 구질스러운 내 과거와도 결별하고 싶었으며 아내와 다시 이런 사소한 손님들 때문에 서로 불편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닥치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모질더라도 지금 잘라내야 한다는 절박한 기분마저 들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조용히 그리고 체면을 구기지 않고 이들이 내 집을 드나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앞으로...”


“저기 이거....”


녀석과 내가 동시에 말을 했다. 녀석은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나는 녀석이 내민 보자기를 쳐다봤다.


“이게 뭐냐..?”


“예...행님 낍니더...‘


“내 꺼...?”



분홍색 보자기에 싼 것은 아버지의 사진과 검정색 수첩, 그리고 하얀 봉투 한 장이었다. 사진. 그래, 그러고 보니 내게는 젊었을 때의 아버지 사진 외에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급하게 쓰느라고 아주 젊었을 때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써야만 했다. 아버지는 주름이 많았고 고생한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있었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내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었다. 그건 내게서 간혹 들리는 대나무 피리 같은 허허로움의 단초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울컥 하는 마음에 다시 심사가 뒤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하얀 봉투를 집었다. 오래 되어 보이는 낡은 만원권 지폐가 들어있었다.



“이건...”


“예...행님. 아버지가 모아뒀던 깁니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제가 군대에 있어서 장례식도 몬 가고...또 어무이는 그럴 일이 있어서 그 때 그리됐습니더. 잘몬했어예. 그 돈은 아버지가 어무이랑 헤어지고 난 뒤에 어무이가 갖고 온 아버지 짐 속에서 발견한 겁니더. 얼마전에 억쑤로 오래 된 짐들을 버릴라꼬 하다 보이 그게 나왔어예....그래서 그건 행님한테 갖다 드려야 할 것 같기도 하고예..또...아무래도 아부지 사진이 별반 없을 것 같아서 하나 갖고 왔습니더.. 행님, 아부지한테서 너는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셨는데 행님은 고생을 억쑤로 했다고 들었습니더..저도 할 말이 없어예...그냥...행님의 아버지를 빼앗았다는 생각만 듭니더. 용서해 주이소...”


녀석이 그런 말을 떠듬거리며 할 동안 그 여자는 담배를 빼 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돈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녀석의 긴 독백을 듣고 있는 동안 목이 말랐다. 아침이지만 술을 한 잔 해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도로 봉투를 녀석 앞으로 내 밀었다.



“가져가서 써...”


“아입니더. 행님, 아부지가 이 돈을 모을라캤으면 모르긴 몰라도 억쑤로 고생했을 낍니다. 이기 한 50만원 되던데예...한 10년 전이면 이 돈도 컸다 아입니꺼. 아마도 행님한테 주실라꼬 모은 것 같습니더. 이거는 행님 아버지 돈입니더...행님이 가지시야 합니더.”

여전히 녀석은 고개를 못 들고 머리를 조아리고 예의바르게 말을 했다. 그게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질투에 가까운 서운함을 느꼈다. 녀석에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림자와 내게 드리워진 아버지는 왜 이렇게 다른가.

‘행님의 아버지를 제가 빌렸어예. 그게 행님한테는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몰랐습니더. 너무 어렸다 아입니꺼. 그러니 행님이 우리 어무이하고 지를 용서해 주이소. 저는 태어나게 해 준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더. 그란데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나타났어예. 거는 그 아버지가 어찌나 좋은지 아버지가 저를 때려도, 그래도 아버지가 좋았어예. 아부지가 저한테는 참 소중하고 좋은 분이셨어예...그 힘든 일 하시면서 고등학교도 마쳐주셨고예...“


 

나는 먹먹한 심정이 되었다. 그건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 여자는 내내 딴전을 피고 있었다. 검은 색의 조그마한 수첩도 하나 있었다. 녀석이 수첩을 펼쳐들고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보여주었다. 내 기억의 범주 안에서 아버지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단 하나의 단서로 여겨지는 그 안에는 갖가지 기록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일테면 내가 어느 중학교를 들어가서 어느 고등학교로 장학생으로 갔다든지, 어느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든지 하는 따위의 나에 관한 자질구레한 기록부터 시작해서 시국에 관한 내용도 있어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과연 아버지를 손님으로 만든 건 나였을까, 아니면 아버지 당사자였을까. 아내를 손님으로 여긴 건 저 사람들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내부를 차지하고 있던 피해의식이었을까. 나는 K를 왜 아직도 한번도 범하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그녀와 몸으로 사랑을 나눌 만큼 우리 관계가 그렇고 그랬다는 뜻일까. 그 여자는 끝끝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녀석은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서울에 오면 간혹 찾아 뵈도 되겠냐는 여운까지도 잊지 않았다.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나는 지금 그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는 K를 만나면 그냥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이 게시물은 [올므]apple♪님에 의해 2010-04-28 11:18:40 불펜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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