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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기도 해서 곰곰히 읽어보니 기본적으로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에게 '몇일에 한번 등판하는 선발투수가 162경기에 나서는 타자보다 기여도가 높을 수 없다'란 이상한 정서를 깔고 있는가 봅니다.

좀 과격하게 말해서 저는 그런 기자들에게 "너 미쳤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일단 그 기자들의 말이 맞다면 타자는 한 경기에 수십번 타석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나 타자는 한 경기에 고작 4~5번 타석에 들어설 뿐입니다. 반대로 선발 투수는 5일에 1번 등판해서 무려 30 타석을 막아내고 나갑니다. 즉 실제 타자 1인은 고작 1이닝 소화하는 셈인데 반해 투수는 6이닝을 소화합니다. 따라서 선발투수쪽의 생산성이 타자보다 더 좋은 겁니다. 

수비는 9명이 모두 공평하게 수비기회를 가진다고 보기로 하고 생략합시다.

결국 선발투수는 MVP 투표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기회를 가질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식의 착각은 사실 사회 곳곳에 만연합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기자들의 착각에는 플러스 인자(공격이 점수를 내니까)가 마이너스 인자(투수는 실점을 막을 뿐이죠)보다 더 눈에 띄는 효과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탓이 있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수십 년 전에 Cost Center와 Profit Center의 개념을 정의했는데 소위 기업 내부에서도 비용 부서와 수익 부서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업 내부에서조차도 부서간 차별이 존재하고 갑을관계마저 있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죠. 그런데 이 드러커가 사망하기 얼마 전 자신의 말을 정정했습니다.

"내 평생 가장 멍청한 실수가 있는데 그건 Cost Center에 대한 정의였다. 모든 부서가 결국은 Cost Center였을 뿐이다."

그러나 거장의 사망 이후 그 어떤 기업도 자신들의 수십년 된 낡은 고정관념을 고칠 생각을 않죠. 투수의 MVP 논쟁은 딱 그런 꼴입니다.

투수의 MVP를 반대하는 시각에는 또 하나, 사이영 어워드라는 투수상이 있기 때문이란 설이 있는데 이 또한 다소 웃긴 얘기입니다. 라룻사였나 토레였나 여튼 이 문제를 벌써 언급했는데 사이어워드는 사실 개인이 잘하는 투수에게 주는 상이죠. 가치기여가 높은 투수에게 주는 상이 아니고.

또 형평의 문제도 있습니다.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 등 여타의 시상에서 투수의 수상은 단 1개 뿐입니다. 그런데 25인 로스터 중 투수는 11~12명, 타자는 13~14명입니다. 타자보다 8배 불리한 거죠. 올스타에서는 투수의 슬랏을 그렇게 많이 부여하는 것에 비교하면 말이죠. 그런 불리함을 사이영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